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hwa Jan 03. 2019

무리한 미아의 이동좌담회

아이덴티티가 교차되는 곳에서 우리는 연극인이 되었다.

실내 관객 참여형 이동식 RPG 연극, <무리한 미아의 이동좌담회>. 기본적인 스토리는 관객이 페미니스트 연극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유도한다. 시작할 때 받는 8만 미아(미아 월드에서의 화폐 단위이다. 물가가 약간 이상하다.)와 임의로 정해지는 법적 성별(1과 2 두가지가 있다.), 그리고 거주지를 선택하게 되고, 자신의 닉네임을 적은 카드를 넣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시작하게 된다.


새롭게 획득한 정체성을 가지고 관객은 계급과 법적 성별의 교차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이 연극에서 법적 성별 1은 법적 성별 2에 비해 여러 면에서 우위를 얻는다. 예를 들어 알바를 하더라도 법적 성별 1은 법적 성별 2에 비해 더 많은 보수를 지급받으며(법적 성별 2의 보수는 법적 성별 1의 보수의 약 60% 정도이다), 퀴즈를 맞추더라도 법적 성별 1은 더 많은 상금을 받고, 집을 구할 때도 법적 성별 2는 치안이라는 이유로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또한 관객은 서울에 집을 구해야 한다. 45,000미아부터 15,000미아까지, 금액에 따라 조건도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특정 지역을 고른 관객은 혜택을 받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관객은 정체성이 교차되는 지점을 체험한다. 법적 성별, 경제적 능력, 거주지. 물론 경제적 능력은 모두 동일한 금액을 받았으므로 어찌보면 현실 세계보다 더 평등한 세계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관객은 이미 집에 따라, 법적 성별에 따라, 가진 금액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연극인이 되기 위한 삶을 산다.


본극은 서울살이가 끝나면 그 이후에는 연극인이 되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극인이 된다는 것은, 극단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하는 만큼 예술적인 일이 아니다. 선배의 눈치를 봐야 하고 연출의 소위 빻은 말을 들으면서도 분위기를 맞춰주어야 하며 어차피 낙방할테지만 창작 준비금을 타기 위해 수십번의 지원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런 과정 끝에, 관객은 연극인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이래도 너는 연극인이 되고 싶으냐?’ 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바꿔 말하면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극인이다’라는 하나의 선언이자 ‘연극인으로서 이런 문제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 제기에 오로지 연극인 그 자체로서만 힘든 것이 아니라 연극인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의 피해자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몇몇 관객은 왜 법적 성별이 2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야 하냐며 억울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이 연극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지역차별, 성차별 등의 이슈를 끌고 와 교차성의 지점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연극인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함께 잘 합쳤다. 그러나 문제는, 합쳐지기는 했지만 섞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교차된 정체성의 복잡함은 점점 약해지고 연극인되기의 고달픔을 말하고 있었다. 혹자는 연극인이 되기 위해 서울에 구조적 차별을 겪으며 올라왔으나 연극인이 되어서도 힘든 것을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구조적 차별은 연극인이 되었다고 해서 극단 내의 부조리한 갑질, 창작자의 배고픈 삶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연극에는 조금 더 깊은 질문이 필요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록앤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