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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Mar 03. 2019

스물 셋, 네덜란드 유학을
마무리하다

<스물 셋, 네덜란드 세렌디피티_프롤로그>

스물 셋이 네덜란드에서의 유학 생활과 함께 아득하게 지나간다. 가득하게.


8월의 어느 아침에 몸통만 한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기숙사에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좀처럼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유럽에서의 시간이, 이제 와 생각해보니 모두 꿈이었던 것만 같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만 기다리며, 지나온 날을 생각했다.


유럽으로의 유학은 많은 이들에게 저마다 다른 인상을 남긴다. 생활 환경의 변화가, 작게는 다른 문화권의 대학생활을 경험하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 크게는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에까지도 무거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기를 잘 보내고 있는 걸까?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지나 온 걸까? 사는 동안 끊임없이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썼다. 신나게 노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한국을 떠나 온 뒤로 머리에 남아 있는 것들이 희미해져 갈 때엔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뭐라도 할라 치면 '유럽까지 와서 고작 이거야?' 싶은 생각에 또 무기력해졌다. 나는 어떻게 변해 가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설렘 반, 걱정 반 이었다.


스물 셋, 유럽 생활은 어설픈 날들의 연속이었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전공에 대해서든, 연애에 대해서든, 유럽에 대해서든, 혹은 삶 자체에 대해서든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그저 무한하게 던져진 자유 앞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발버둥쳤다. 나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11,400 km나 떨어진 이 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생각해야 할 까? 매일 물밀듯이 밀려 오는 '다름' 앞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 지 고민했다. 


우리와 너무도 다른 이곳에 도착해 보니, '변화하는 것'보다 '어디까지' 변화하면 좋을 지 결정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적당히 즐기며 균형을 잡아 온 것 같은데, 거기에 집중하느라 어느 것 하나 푹 빠져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또 머리를 내민다. 구제 불능의 욕심은 끝이 없다.


많은 청년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난다. 국가통계 포털의 자료에 따르면, 학위나 연수를 위해 한국을 떠나는 유학생은 2015년 21만여 명, 2016년 22만여 명, 2017년 24만여 명으로 증가세에 있다. 매년 유럽 여행을 다녀 오는 사람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들보다 유럽에 대해, 유학생활에 대해, 스물 셋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유럽을 들여다본 들 그들의 삶을 다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것들을 느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왜 취업 걱정, 내 집 마련 걱정을 하지 않는지, 한국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네덜란드의 과학은 어째서 한국보다 훨씬 경쟁력이 높은지, 취리히의 복잡한 교통시스템은 어떻게 한국보다 교통사고가 적은 지, 그 나라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도 모를 그 질문들이 궁금한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의 끝에, 우리와 다르면서도 닮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무엇을 꿈꾸고 사랑해야 할 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공부한답시고 머릿속을 절묘하게 오려 놓은 격언들로 꽉꽉 채우는 대신, 서툴더라도 우리 생각을 질박한 언어로 빚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과학 연구 분야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실험 도중에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뜻밖에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스물 셋, 네덜란드는 우리에게 '세렌디피티'의 순간들로 가득했다. 이 시기, 혹은 이곳을 방문할 모든 사람들에게도 '세렌디피티'의 순간이 매일 찾아 올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스물 셋이나 유럽 유학을 '더 알차게', '더 멋지게' 보내기 위한 비법이란 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인터넷에 검색해보기만 해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온갖 방식의 비법이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 삶의 몇몇 순간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찾아 온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속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임을 기꺼이 선택했을까? 이 시간이 지나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이 이야기를 읽는 모든 분들께도 뜻밖의 선물과 같은 '세렌디피티'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 본 유럽과, 젊지만 어리지 않은 우리의 스물 셋에서 뜻밖에 발견한 것들을 조심스레 소개하고 싶다.


2019.02.04

독일 아헨 라인-베스트팔렌 공과대학교(Aachen RWTH) 어느 도서관에서,

강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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