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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May 11. 2019

생명의 경이로움 보이는 과학자의 일대기

과학기자의 과학서평 / 랩 걸

강한솔 기자 / 저작권 : 2019.05.08 한국과학창의재단 Sciencetimes


저자인 호프 자런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그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 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심지어 녹색이 주는 소박한 위안마저도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집 앞의 가문비나무를 바라보며,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에 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다룬 ‘랩 걸’에서 식물과 자연에 대해, 과학자로 또 여성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삶의 질곡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사 학위를 받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나라 반대편으로 이주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페리시 쇠뜨기들은 살아 숨 쉬는 생물답게 땅을 건너 뿌리를 내린 다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라는 말로 다독인다.


참나무 겨우살이 Taxillus yadoriki / 2014 영국왕립원예협회 최고상 수상작. 신혜우 / 알마출판사

저자는 과학의 쓸모에 대해 강변하거나, 나무를 베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실험 과학자들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바꾸거나 성차별을 파괴하자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식물’을 연구함으로써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도로 옆에 자라는 잡풀이 빛을 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첫 잎사귀를 내어 놓는지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파산 위기에 시달리는 자신의 연구실 재정과 유능한 동료에게 반년 넘게 월급을 줄 수 없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우리를 지원해줄 의향이 있다면 내게 전화 한 통 해주시기를. 미안하지만 이 문장을 안 넣을 수가 없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랩 걸’은 씨앗과 나무, 호프 자런에 관한 기록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세상의 ‘랩 피플’들에 대한 오마주


‘랩 걸’은 호프 자런의 이야기지만, 과학과 얽힌 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많은 ‘랩 보이’들, 과학 하는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랩 피플’에 대한 오마주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에서 단순히 워킹 우먼이 맞닥뜨린 유리 천장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읽어 내는 것은 책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호프 자런에 대한 평가절하이기도 하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니, 성차별이니 하는 이슈보다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올리버 색스 이후 또 한 명의 이야기꾼을 만났다’ 고 말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생명의 경이로움 보여주는 과학자의 일대기


어떤 이는 말에도 세월이 깃든다고 했다. 시간은 사건의 축적이라 했으니, 사람의 말도 ‘사건의 축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과학과 식물에의 순수한 애정’이라는 아주 단순한 말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경이롭다는 당연한 명제를 평생에 걸쳐 새로이 깨닫고, 보여준다.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대기에 과학을 끼얹었음에도 독자를 책 앞에 붙들어 앉힐 수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https://www.sciencetimes.co.kr/?p=190508&post_type=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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