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곰돌이 Jul 22. 2019

글솜씨는 부족합니다만

포항 공돌이, 병아리 기자가 되기까지

*이 글은 POSTECH 입학사정관실에서 발간하는 POSTECHIAN 잡지 2018년 겨울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쓰는곰돌이> 라는 필명으로 '오마이뉴스'와 '브런치'에서 칼럼을 기고하는 강한솔이라고 합니다. 실생활에서 과학을 만나며 한 사람이 갖게 되는 호기심과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2년 차 초보 글쟁이입니다.


포항공대에는 좋은 글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은데, '글 짓는 공돌이'에 대해서 저 같은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조금 수다스러운 대학생에 불과하고,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괜찮은 이야기꾼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더라도, 말만 많았지 글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치어로'라는 응원단에서 활동했고 'TEDxPOSTECH'이라는 강연을 개최하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는 데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취미로 페이스북에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지만, '잘'쓰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처럼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 많은 공모전에 예선 탈락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많은 자기 계발 서적들에서 강조하는 것과 같이, 저도 하고 싶은 일보다는 잘하는 일, 혹은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해 왔습니다.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 잘하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잘한다'는 기준을 타인에게서 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해 야 하고, 그것을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옆 사람과 비교해야 했고, 꾸준히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 우수한 친구들, 선배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잘하지 못하면 할 맛이 안 나고,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으면 의기소침해지는 데 저는 둘 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잠깐 열심히 하다가도 작은 고비를 만나면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글은 지지리 못 쓰더라도 재미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 하겠다는데 어렵고 멋있을 필요 있나요. 그냥 솔직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지 않고, 제대로 알고 쓰기만 해도 휴지통 행(行)은 면합니다. 어차피 못하는 것, 부담도 없어 홀가분합니다. 


혼자만 낄낄거리기가 좀 미안하시다면, 그때는 좀 더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을 쓰시면 됩니다. 가끔 좋은 글을 베껴 써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을 겁니다. 공모전에 수도 없이 헛발질해 본 사람의 의견이니 적당히 걸러 들으신대도 하는 수 없지만 말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글 값을 받고 칼럼을 쓰는 요즘도 종종 헛발질을 합니다. 때로는 '키보드로 똥을 누는 것 같은' 끔찍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주제가 고갈된 날에는 마감 날짜를 곁눈질하며 말도 안 되는 글감을 열댓 개씩 적어 보기도 합니다. 80여 편의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그렇게 쓰다 만 메모들이 블로그에 800여 개쯤 쌓였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글에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키보드 앞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시때때로 고개를 내미는 불청객도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교한 기계조차 몇 퍼센트의 확률로 불량품을 찍어내는데, 저처럼 어리바리한 글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기 일쑤고, 좋은 문장을 쓴 듯싶다가도 자고 일어나 다시 읽어보면 또 제자리입니다. 어렸을 적, 마신 우유를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매달 벽에 그렸던 까만 줄은 도통 올라갈 생각을 않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멋진 이야기를 기대하며 말문을 엽니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운 좋게 그럴듯한 문장을 떠올린 날이면 하루 종일 그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싱글벙글합니다. 이제는 가슴 언저리에 오는 까만 줄을 떠올리며, 내일은 더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글을 쓰는 과학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과학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들 사는 모습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공감하고, 담백한 말투로 읊조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혀 무리하다가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부족한 솜씨에 좌절하지 않고, 올해에도 변함없이 글 짓는 일이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해, 독자 여러분들도 아마 저마다의 목표를 세우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게 무엇이건 푹 빠질 만큼 충분히 재미있었으면 합니다. 저만 재미있으면 외로우니까요. 아마 저보다 훨씬 잘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딘가에서, 무언가에 푹 빠진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무엇이었나-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