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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Dec 23. 2018

나는 무엇이었나-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존재'

'강철의 연금술사'로 보는 인간다움의 조건 

'나'라는 건 어떤 존재일까? 

때때로 이 세상에 나 하나쯤 없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쯤 없어도 세상은 지금과 같았을 것이고, 누군가 내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고, 기회를 대신 누렸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면 사람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곧 적응하게 될 것 같았다. 그게 무서웠다.


주말인데도 모두들 할 일이 있다는 기분이 주눅 들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죽음처럼 느껴졌다. 시간에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시간을 죽여야만 했다. (배준, 시트콤)


'존재'하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영원한 잠에 빠져들어야 하나, 부끄러움을 마주해야 하나? 영원한 잠에 빠져드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쉽다.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가니까' 일단 잠에 빠져들면 몸이 편하고, 마음도 편해진다. 크리스마스를 달력에서 지워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술을 진탕 마시고 크리스마스 내내 잠만 자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조용히 있어도 중간에 보내 준다면, 정말 그런게 있다면 세상은 아주 많이 조용해졌을 것이다.


반대로 존재하는 것은 쉽고도 어려웠다. '솔직해지는 것'은 때로 너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때면, 편한 날보다 불편한 날이 더 많다. 중간은커녕 중간에도 못 미치는 날이 더 많다. 우리가 꿈꾸는 모습에 미치는 것은 고사하고 명백한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다. 저물어가는 한 해의 마지막 연휴에 제대로 아는 것 없음에 수치스러워하고, 지나온 길에 무엇 하나 이뤄낸 것 없음에 부끄러워한다. 나는 무엇이었나, 짐짓 가슴을 펴 보지만 허탈한 마음에 깊은 마음속으로 자꾸만 침잠(沈潛)해간다.

뭔가 열심히 발버둥친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강철의 연금술사>는 그래서 많은 생각을 남긴다. 이야기는 죽은 어머니를 연금술로 되살리려던 에드와 알 형제가 실패해 몸을 잃고, 강철 몸에 의탁한 채로 원래 몸을 찾기 위해 떠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에드와 알은 모험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견딜 수 없어 허상을 보여 주는 종교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가족을 되살리려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세상에 꺼내 놓은 사람도 있었다.


진리에 눈이 멀어 아내와 딸을 '개'와 섞어 한 마리 키메라로 만들어 버린 과학자도 있다


정의를 핑계로 거리낌 없이 학살을 자행하는 군인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동등한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관에서,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다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가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몸부림친다. 때로는 온전히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찌 손쓸 수 없는 더 큰 세계의 흐름에 떠밀려 다닌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마음에 밑바닥까지 맛보았을 때에도,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거대한 흐름의 아주 작은 존재들이지만, 

그런 작은 존재들이 모여 세계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아픔도 무언가를 얻기 위한 대가였을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의 희생 없인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가를 지급한다고 해서 항상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걸 지급한다고 해도, 항상 같은 걸 얻지는 않는다. 그래도 사람은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없고, 우리가 받았던 고통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대가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한 것들은 다 무엇이었나.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지. 숨을 참고 저 바닥까지 내려가 가만히 몸을 웅크려야지. 그리고 다시 발버둥쳐 올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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