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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Aug 15. 2019

과학 하는 즐거움

과학자는 시인의 눈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머 중에 <공대생이 여친 안 생기는 이유>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글이 있다.



재미있게도, 그 카이스트생은 자수하는 글을 올리며 해명했다고 한다.


장력을 얻기 위해 철근을 꼬아서 만들었는데, 설계할 때부터 최대 하중을 늘리기 위한 철근수를 예상하고, 철근을 당겨 줄 아치형 하중 분산 주탑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물어보길래 설명해줬을 뿐이라는 거다. 그 간호사는 잠시 후 화장실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지간히 지루하게 들렸나 보다.

무수히 많은 공대생들의 소개팅을 수포로 돌렸을 대전 엑스포 다리.

어떤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 과학적 사고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면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계산적이게 되고, 기계나 컴퓨터처럼 변해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따스함, 인간성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의 시선은 계산적이고 기계적인가?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직관적이고, 해석적이고, 인간적이다. 과학 하는 사람이 세계를 보는 방식은,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소한 것들, 가령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이나 지렁이도 때로는 그들의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답을 찾아가는 방식에 따라 '시'를 통해 깨달음을 나누기도 하고, '연구'를 통해 대상 속에 파묻혀 있던 진실을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가장 익숙한 대상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것은 같다.


그러므로 과학 지식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차원에서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과학을 통해 이러저러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래서 그것이 별 것 아닌 시시한 것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그와 같이 설명되기만 기다리는 새로운 현상들이 얼마나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 현상 위에 얼마나 많은 흥미진진한 질문들이 남아 있으며, 그러한 질문들 또한 끈질긴 탐구를 통해서 언젠가는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 혹은 설렘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이 분야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연구들이 거의 매일 발표된다. 지금 몸담고 있는 연구 분야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유명 학술지 Nature에 실린 한 논문을 보고 '뭐 이런 정신 나간(정도로 신기한) 연구를 하는 놈이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지금의 연구실이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뒤에, 기존에 연구를 배우던 곳에서 양해를 구하고 이곳으로 옮겨 와 기본 연구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뭐 이런 게 있나, 한번 배워라도 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연구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우는 일이 아직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지금 공부하는 분야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든다. 정신 나갈 정도로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면서, 이제 그 가능성 가운데 몇 가지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런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 굴려져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과학, 기술의 발달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인류가 달에 사람을 보낸 게 1969년인데, 그 뒤로 40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나. 저궤도에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0년 뒤에는, 달을 넘어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많은 노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상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생명과학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하는 일들에 몰두하고 있지만, 단지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들, 우리는 점점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구에서 살게 될 뿐 다시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이 과학, 생명과학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분야들이 아직 많다. 사람들이 이곳에 더 많이 매료되고, 같이 상상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어떤 발견이 있었고, 내일은 또 어떤 정신 나간 아이디어들이 실현될지,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더 다양한 차원에서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지 기대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입 다물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내게 지혜가 전수된다면

나는 거부하겠다.

무엇이든 나누지 않고

소유하는 데는 기쁨이 없다.


- 세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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