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올리버의 시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
해마다 우리는 목격하지
세상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풍요로운 곤죽이 되어가는지.
그러니 그 누가
땅에 떨어진 꽃잎들에게
그대로 있으라
외치겠는가,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과 결합된다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을 알면서.
그게 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러니 오늘, 그리고 모든 서늘한 날들에
우리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비록 해가 동쪽으로 돌고,
연못들이 검고 차갑게 변하고,
한 해의 즐거움들이 운명을 다한다 하여도
메리 올리버 〈어둠이 짙어져가는 날들에 쓴 시〉* 전문.
그러므로 곧 한 해가 저문다 해도 서글퍼할 필요는 없겠다. 지는 해 앞에서 “달리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신 “쾌활하게 살아가야지” 다짐해 보자. 어제의 밑거름이 내일의 발걸음을 부추겨줄 것이다. 그렇게 믿어보자. 떨어진 꽃잎으로 새로운 꽃잎을 만들기 위하여. 이 흔한 결론을 말하려고 이 시를 가져왔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자연주의’ 또는 ‘생태’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낭만적이고 순수한 시인의 관점이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 세계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역량이 내겐 없지만, 늘 그래왔듯 짐작해 볼 수는 있으리라.
인간이 속한 자연을 노래한다는 것은, 세계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뒤따르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세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므로 같은 책에 실린 시를 한 편 더 소개한다. “오늘 아침/아름다운 백로 한 마리/물 위를 떠가다가//하늘로 날아갔지/우리 모두가 속한/하나의 세계//모든 것들이/언젠가는/다른 모든 것들의 일부가 되는 곳//그런 생각을 하니/잠시/나 자신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져.”(〈하나의 세계에 대한 시〉*) 두 편의 시를 연결해 다음의 결론을 내려 본다. 세계의 본질이란 ‘순환 또는 환원을 깨닫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존재했던 것의 원기”가 “존재할 것의 생명력에 결합”된다는 사실을. 인생도 그럴 것이다. 지나갈 날들은 지나온 날들로부터 이어져 온다. 시간에 분절은 없다. 우리 각자가 겪는 모든 순간이 연결돼 저마다의 인생이 되므로. 그중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하루나 아쉬움이 남는 한 해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운 날들. 그런 날들조차 중요하고 아름다운 세계(인생)의 일부라고 믿는다면 적어도 우리의 인생이 무의미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매 순간을 “아름답게” 여기는 건 어렵다. 아무리 다시 봐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도무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도 낙관할 수 없게 된다. “쾌활하게”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답한 시도 있다. “아침에 바닷가로 내려가면/시간에 따라 파도가/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지,/내가 하는 말, 아, 비참해,/어쩌지―/나 어쩌면 좋아? 그러면 바다가/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마지막 연에 주목해 보자. ‘바다’는 ‘비참한 나’를 앞에 두고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위로나 도움이 필요한데, ‘바다’는 왜 비정하게 돌아서는가.
다만 이것은 외면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 시의 결말은 달랐을 것이므로. ‘바다’는 제 할 일을 함으로써 ‘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리라. 어서 가서 너의 일을 하라고. 그 순간 나의 ‘비참한’ 순간은 인생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환원되고 순환되었으리라. 만일 마지막 연에 따뜻한 위로의 말이 적혀 있었더라면 화자는 잠시 마음의 위안을 느꼈을 테지만, 다시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해의 끝에서 나 역시 다짐해 본다. 새해에도 계속, 나의 일을 해야지. 가능한 한 쾌활하게. 인생을 낙관하기 위해, 아니 우리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느껴보기 위하여.
(2023. 12. 23.)
* 이 글에 소개된 세 편의 시는 모두 《천 개의 아침》(메리 올리버 저, 민승남 역, 마음산책, 2020)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