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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Jan 25. 2024

성찰하는 힘

강지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읽고 쓰는 일에 어려움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말해야 한다면 ‘인용의 조심스러움’을 꼽겠다. 저자가 남긴 이야기, 논리, 마음 등을 ‘적당히’ 옮길 때 맥락이 축소되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용이 조심스럽지만, 좀더 섬세하게 접근해야겠다고 다짐할 때가 있다. 저자가 빈곤을 겪은 여덟 명의 청(소)년을 십여 년간 심층 인터뷰한 결과물인 이 책 역시 내겐 그랬다.

    

인터뷰이들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8쪽) 원했다고 하나 이 글에는 개별 사례를 옮기지 않으려고 한다. 각자의 가난과 성장의 사례를 ‘충분히’ 옮기지 못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난이 납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 상황과 연령대 외의 공통점도 없어서 요약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저마다의 사례 대신 모두에게 필요한 한 가지만 말해보겠다. 특정한 힘에 관하여.


어떤 힘인가. 책에는 ‘성찰하는 힘’이라고 적혀 있다. 저자는 이 힘을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97쪽)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을 돌보고 스스로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내면적 성숙도”(같은 쪽)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 가난에서 벗어난 이들이 공통으로 이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썼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경제 지원도 분명 도움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근본 해결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성장의 촉매 또는 나침반이 되어줄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리라. 안타까운 것은 모두가 이 힘을 가진 건 아니라는 것. 극히 일부가 가진 힘으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 원인이 한 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 배워두어야 할 힘으로 인식한다면, 가장 먼저 교육과정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겠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청소년 정책을 연구해 온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교육체계는 청소년에게 이 성찰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과정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같은 쪽)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저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어서 시간 내에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점수를 받아야 성공하는 교육체계를 ‘공정’하다고 믿는다.”(97~98쪽) 성찰의 부재가 공정의 기준을 바꾼 사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턴가 개인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정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말들이 많았으나 지금처럼 떳떳하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사회 안전망 앞에서도 불공정을 운운하며 자신이 받은 평범함이라는 특혜에는 눈감는 사례도 더 많아진 것 같다. 목격담이라고 하기엔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교육이 성찰하는 힘을 도외시한 결과는 이미 우리 앞에 있었다.


어떤 목소리와 사례가 빈번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성찰의 부재가 표준이 된 이 현상은 개인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공동체 모두가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성찰하는 힘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 사람과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친 나는 해답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성찰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이제라도 성찰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 어떻게? 그 방법을 찾는 것부터가 성찰의 시작임을 안다. 앞으로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전에 오늘은 글쓴이의 책임을 다해야겠다. 문제를 제기했다면 대안도 말해야 하므로. 읽고 쓰는 일은 대개 무의미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을 읽고 해석하는 분들은 믿는다. 더 나은 해답을 떠올려줄 그분들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 이 책, 일독을 권한다.



(2024. 01. 24.)

(@dltoqur__)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돌베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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