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지로움 Feb 20. 2021

모성애라는 씨앗에 사랑이 담기는 순간

엄마는 만들어진다. 

날 때부터 좋은 엄마가 될 사람이 정해지는 건 아닐 거다. 선천적으로 좋은 기질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연히 예쁘게 태어난 아기를 보곤 후천적인 모성애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엄마는 없어요.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며, 환상입니다."

중학생 무렵 성교육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갓난아기는 양수 속에서 10개월을 보내며 쭈글쭈글 퉁퉁 불어있다. 새빨갛고 못생긴 고구마 같다는 게 솔직한 의견일 것이다. 10달의 기다림, 긴 진통의 끝에서 마주한 쭈글쭈글 신생아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솔직한 마음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엄마들은 온갖 죄책감에 시달린다. 먹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온갖 생활이 태중의 아기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 두렵다. 아파도 진통제 한알을 쉬이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임신 기간 동안 엄마가 겪어내야 하는 변화무쌍한 몸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엄마들의 죄책감은 아기가 태어난 직후에 다시 시작된다. 


아기를 만나는 첫 순간 종소리가 들리고 아기천사가 내려온 것 같이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환상과 다르게 '이 핏덩이가 내 아기라고?'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친다면 아기가 이뻐보이는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아기를 낳아본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모성애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이야기한다. 모성애란 건 참 무섭다. 과해서도 없어서도 안된다. 잔인하게도 겉만 보고는 아기와 엄마 사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나'라는 사람으로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엄마'로서의 평가이기에 너무나도 다를 잣대가 주어진다. 그 평가는 때론 잔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내 안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모성애라는 존재로 인해 아기를 갖는 것부터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너희들이 뭔데 부모-자식 사이를 평가해!라고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정말로 사람 같지 않은 무서운 부모도 있기에....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내 배에 아기가 자리 잡아 크기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제법 태동도 힘차게 하는 덕에 녀석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아기가 내 배를 차는 힘과 함께 나의 모성애도 꾸준하게 자라나고 있다. 


난 꽤나 어린 시절부터 모성애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기를 상상하며 기대하곤 했다. 그럼에도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에 적잖이 당황해하며 우울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었다. 내가 임신에 무너져 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양한 마음이 내 안에 드나들며 나의 모성애라는 씨앗을 틔우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행복감, 또 다른 날은 불안함, 억울함, 다시 감사함이 찾아온다. 이렇게 수많은 마음이 드나들며 점점 행복감과 감사함으로 싹튼 모성애를 발견했다. 나는 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직후부터 밤마다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아기에 대해 떠올리며 기도를 했다. 그 기도의 내용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임신 초기 자신이 없어 나를 다잡기 위해 하던 기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도에 힘이 실린다. 마음이 단단해진 덕일까? 내 안의 모성애가 무럭무럭 자라서일까?


내 기도는 주로 이렇다. 

'제 안에 자라나고 있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보호받아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아이가 세상에 나와 행복한 삶을 살고 건강한 생각을 하며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며 바른길로 키워 낼 수 있는 지혜로움과 지치지 않을 힘을 저희 부부에게 주세요.' 


기도가 하루하루 거듭 될수록 아이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구체화된다. 그 모습이 구체화될수록 책임감이 피어난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방식이던 아기를 만나기 전에도, 그리고 키워내는 평생 동안에도 필요하다. 아기에 대한 책임감이 클수록 노력을 할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노력을 할수록 더 큰 책임감이 다가오는 것 같다. 아기를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은 욕심과 함께 말이다. 


아기와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순 없지만, 아기를 위하는 마음을 키워낼 순 있다. 10달을 품어낸 아기를 마주한 순간 상상과 다른 모습에 1초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이내 아이를 위하던 그 마음으로 뒤덮여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체감하게 될지 모른다. 아마 나의 경우는 그럴 것 같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진행된다. 인간은 동물이고, 본능이란 것으로 설계되어 있으니 이 또한 다들 비슷하게 경험할 것이다. 


엄마는 만들어진다. '상황에 의해서'

엄마는 만들어진다. '시간에 의해서'

엄마는 만들어진다. '본능에 의해서'



상황이 되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엄마가 되어간다. 
이 모든 게 본능이고 우리 안에 씨앗으로 숨겨진 모성애라는 것이다. 


씨앗이 틔어지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모든 게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슬픔은 무이자 할부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