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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Feb 26. 2022

육아와 커리어의 길목에서 좌절하는 엄마

퇴사하던 날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아기가 뱃속에 자리 잡았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나는 커리어 걱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커리어를 걱정한다.


어쩌면 지난 10년은 거의 모든 순간을 자의로 선택하며 내 인생을 통 털어 가장 주체적으로 살아온 순간이다. 나에게 일이란 건 그랬다. 나를 나답게 하고, 증명해내는 일이었다. 회사 안팎으로 인정받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내가 10대에 꿈꾸던 그 미래들보다 나는 항상 빛났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하며 빛나는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지난주 퇴사를 선택하고 마지막 출근과 퇴근을 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를 거쳐 복직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나는 퇴사 길에 올랐다.


아기는 벌써 8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작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만큼 사람 같아졌다. 이유식을 먹고, 옹알이로 자기표현을 한다. 걸음마를 위한 도전을 끊임없이 하며 세상을 탐구하기 시작한 진짜 사람이 되었다. 8개월이란 시간이 이렇게 짧고도 긴 시간인지 새롭게 깨닫는 순간들이다.


아기를 품고 있던 10개월, 그리고 8개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했다. 나의 '일'에 대하여,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성인이 된 뒤로 나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이 바로 일이었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나를 더 알아가는 일이었고, 나의 미래를 다지는 일이었다. 워커홀릭이었지만, 유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치열하게 세상을 향유했다. 그렇게 향유한 세상에서 배운 것들은 다시 나의 일을 풍요롭게 하고 한층 발전시켰다. 그런 '일'이 나에게서 갑자기 사라졌다.



아기를 낳고 처음엔 회복되지 않는 몸 상태가 너무 힘들었다. 그 뒤론 육아라는 높은 벽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곤 이제 놓쳐버린 것 같은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육아를 즐기며 행복할 순 없을까? 언젠가는 다시 일하겠지! 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순 없을까?라는 의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채운다.


물론 내가 항상 우울에 젖어있는 건 아니다. 아기와 보내는 시간은 정말로 행복하다. 아기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춤도 춰주고 무한 뽀뽀세례를 퍼 붓기도 한다. 잠들기 전 꽁냥꽁냥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SNS는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차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다. 멀리서 본다면 그저 행복한 육아맘의 모습이다. 정말로 육아를 잘 해내고 있다고 보인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 정말 행복한 육아맘이다.


행복한 육아맘의 우울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은 육퇴 후 어둑한 밤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어느 날은 그 우울감에 잠식당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이겨내기도 하며 그렇게 나는 계속 마음을 다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우울은 글자 한 획 한 획에 묻어 나간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를 정화한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은 영상이라도 만들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었다.


내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한다고 소리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모여 글이 되고 영상이 된다. 그렇게 나는 고요하게 외친다. 내가 여기에 있노라고.



이쯤 되면 누군가는 그렇게 힘들면 일하지?라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고, 워킹맘이 아주 흔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너무 신기하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맞벌이를 하는 거지? 도대체 누가 아기를 돌보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고 주변을 돌아보니 결국엔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이 없다면 시터를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아기를 낳고 단 몇 달이라도 직접 키워본다면 그 어떤 선택도 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에 '남'인 시터를 고용하는 일에는 늘 불안이 깃든다. 세상에 좋은 분이 너무 많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내 자식의 일에 단 1% 가능성으로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나는 결국 시터 구인을 포기했다. 상대적으로는 감시하는 눈이 있는 어린이집을 선택하려 했지만 8개월짜리 아기는 너무 작고, 어리다.


뉴스에서는 인구절벽이 시작되었다며 난리이다. 신생아 출생이 현저하게 낮아진 2022년에 사는, 8개월짜리 아기를 키우는, 지금 막 회사를 그만둔 나는 그런 말도 너무 듣기가 싫다. 아기를 낳은 뒤의 삶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데 과연 누가 아기를 낳고 싶단 말인가.


예전보다는 처우가 좋아져 육아휴직을 쓰는 1년은 나라에서 일자리를 보호해준다. 고용주는 휴직 중인 직원을 자를 수 없다. 근데 1년의 육아휴직을 온전히 다 쓰고도 원래의 보직으로 편하게 돌아갈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감당해야 하는 빈자리 또한 휴직 직원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권장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사용하는 비율이 낮다. 이건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반증이다.


복직과 퇴사를 갈등하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워킹맘 A와 나눈 대화에 '학대'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었다. A는 출근하는 엄마(A)를 대신해 아기를 맡아 줄 가족이 없어 시터님을 고용하셨다. 정말 좋은 분이고 감사한 마음이 많지만, 육아에 대한 방향 등등 A는 시터님에 불만도 역시 많았다. 그 부분이야 엄마가 직접 키우는 게 아니니 당연히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그 불만을 잠재우는 마음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되었다. '학대만 안 당해도 다행이죠'



언제부터 우리가 '학대'라는 단어를 이렇게 자주 쓰게 되었을까?

연일 터져 나오는 영유아 대상 학대에 대한 뉴스를 제외하고도 지인의 이야기, 또 그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불안을 마주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통감할 만큼 내 자식은 귀하다. 사실 귀하다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담아낼 수도 없다. 그런 아기가 마주해야 할 세상은 되도록 따듯하고, 평화롭고, 밝고, 예뻤으면 한다. 그래서 아기의 마음에 작은 불안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런 내 금쪽같은 아기에게 '학대'라는 일이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건 엄마의 마음을 가시덩굴로 만든다.


출퇴근 시간 왕복 3시간.

8개월 아기.

도움을 받을 가족 없음.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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