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명진 May 16. 2021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다면

20210516

그저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에 집중하려면 지금 펼쳐진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알아차린다고 해서 곧바로 마음이 가라앉지는 않는다.


먼저 마음을 흔들어놓는 진앙지가 어디인지 살펴본다. 대부분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 두려움을 받아들일 때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생각보다 두려워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그 정도 두려움은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 어쩌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스스로 과장한 건지도 모른다.


한 동안 미뤄온 글쓰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원고 청탁을 받아놓고 마감을 못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든 써보려고 책상에 앉아 있어도 쓰지 못했다. 그 글을 쓰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딴짓을 했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글이 나왔다. 글을 미루면서 3주간 고통스러워했는데, 글을 써낸 시간은 3시간이면 충분했다.


아주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잘 쓰지 못했을 때 비난을 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비난받을까 두려워서 잘 쓰고 싶었고, 잘 쓰려고 하니까 한 문장을 써내기도 힘들었다. 어느 순간 '그 정도 비난은 받아도 괜찮다,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두렵지 않았고, 글을 아주 잘 써야겠다는 욕심도 사라졌다.


욕심과 두려움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몸집을 키우면 덩달아 커지며 서로를 강화한다. 그 굴레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두려움의 뿌리에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 욕심을 내려놓기 힘들다면 두려움부터 해결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미루고 있는 한, 마음의 동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마음이 고요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비로소 의지가 생기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


오랜만에 써야 할 글이 없는 일요일이다. 새로 시작하는 한 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지만 그 일을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이 어수선하지는 않다. 이른 아침 마지막 봄비가 내린다. 비가 들이치지 않을 만큼 살짝 열어놓은 창틈으로 상쾌한 공기가 작업실로 스며든다. 선물 받은 커피를 내렸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검은 가루를 적시자 커피 향이 퍼진다. 습기 머금은 바깥공기가 그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창가를 바라보며 글을 쓴다. 지금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메인이미지 출처 :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잠든 아이의 숨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