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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Aug 30. 2023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vs 타인을 표현하는 글쓰기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는 나의 경험이나 감정, 생각 또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어떤 것들을 표현합니다. 주로 시, 소설, 수필과 같은 문학이 여기에 속하죠. 문학은 예술의 영역입니다. 문학적 글쓰기는 누구나 시도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타고나야 하니까요.  


저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대학교 1학년 때 문학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기에 대학생 때 문학동아리 회장을 맡기도 했죠.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문학동아리 회장을 맡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입니다.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은 보통 문예부장을 맡죠. 문학동아리의 꽃은 회장이 아니라 문예부장입니다. 회장은 동아리 회원들 잘 챙기고, 행사를 잘 치러내는 사람이 맡았는데, 문학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제격이었습니다.  


저는 동기들 중에서 시나 소설을 못쓰는 축에 속했습니다. 시를 쓰기에는 표현력이 부족했고, 소설을 쓰기에는 상상력이 부족했죠. 거기에다 제가 쓴 글은 진부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대학교 문학동아리 경험 덕분에 '나는 문학적인 글은 잘 못 쓰는 사람'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후 미련 없이 기자를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문학적인 글은 못써도, 복잡한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신문, 잡지 등 전통적인 미디어에 실리는 글은 주로 '타인을 표현하는 글쓰기'입니다.  누군가를 소개하는 인터뷰뿐만 아니라 기사에 보도되는 대부분의 사건은 타인이 겪은 일입니다. 전통적인 기사는 '나'를 완전히 배제하는 글쓰기였습니다. 요즘에는 자신의 경험을 기사로 쓰는 신선한 시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블로그, SNS처럼 나를 표현하기 위한 개인미디어가 등장한 것도 새로운 현상이죠. 나를 표현하는 문학적 글쓰기와 타인을 표현하는 미디어 글쓰기의 경계는 많이 흐려졌습니다. 바야흐로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니까요. 


그럼에도 미디어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영역입니다. 예술은 타고나야 하지만 기술은 배우고 익힌다면 누구나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시민 씨는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에서 "누구나 안도현처럼 쓸 수는 없지만, 누구나 유시민만큼 쓸 수 있다"(책에 실린 정확한 문구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고 썼습니다. 간혹 글쓰기 강의에서 이 말을 빌려서 소개하면 안도현 시인을 모르는 사람도 꽤 있더군요. 점점 더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라는 시를 소개하면 "아!" 하고 탄성을 짓습니다. 두 문장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런 글을 아무나 쓰지 못합니다. 타고나야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유시민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기자들의 글쓰기가 대단한 것 같지만,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같은 경우에는 사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배울 기회가 없어서 쓰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미디어 글쓰기는 기술에 가깝다고 말한 겁니다. 물론 배우고 익히는데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도 꾸준한 연습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스트레이트 기사의 경우, 15분 정도면 써내는 기자들은 이런 기술을 오랜 시간 연마한 전문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들어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기자단 글쓰기 강의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이야기를 스스로 취재해서 기사를 쓰고 마을공동체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기한 점은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 인터뷰 기사 쓰기, 탐방 기사 쓰기 등 평생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종류의 글을 강의를 듣고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누구나 곧잘 써낸다는 점입니다. 20대 젊은 청년들부터 30-40대 주부, 은퇴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노년층까지 이 분들이 쓴 글을 보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확신합니다. 미디어 글쓰기는 기술이고, 기술은 배우고 연마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요. 그동안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고, 글쓰기를 연마할 연습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한 달 전,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 수업에서 60대 이장님 한 분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기사를 완성한 뒤 던진 한 마디가 기억나는군요. 


기자들이 쓰는 기사, 그거 별 거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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