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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05. 2020

시골 다락방에서 글쓰기

2019년 가을쯤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꿈꾼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도서관처럼 너무 조용한 곳보다는 새소리도 들리고 창밖으로 천연의 색감을 품은 자연이 내다보이면 금상첨화다.


딱 그런 장소가 바로 우리 집 다락방이다. 시골집 다락방에 앉아서 조용히 글을 쓰다 잠시 멈춰 덩 빈 마당을 내려다보거나 눈높이에 있는 구름을 쳐다보며 글감을 찾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이다.


10년 전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한옥이다. 1946년, 그러니까 해방 이듬해에 지었는데 목수가 못질을 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서 끼어 맞춰서 지은 집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살았던 그런 집은 아니고 옛날 논밭이 많았던 만석꾼의 집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같은 마을 아랫집은 주인아저씨의 동생네가 살았다고 하는데, 아저씨 말로는 당시에 좋은 나무를 구해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짓고 남은 나무로 동생네 집을 지었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은 눈 내렸을 때가 가장 멋지다. 하지만 시골의 겨울은 너무 춥다.


부엌과 안방, 그리고 마루와 사랑방이 일렬로 배치된 일자형 한옥집인데, 생각해보니 대가족이 살기에는 그렇게 넓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집에 아들 둘, 그리고 아내와 함께 10년째 세 들어 산다. 그동안 한 번도 전셋값을 올리지 않은 착한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주인아저씨는 지금은 서울에 산다. 해방둥이인 주인아저씨는 이 이 집터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이 집을 지었다고 했다.


아직 툇마루와 창호지 문을 그대로 유지한 별로 손대지 않은 한옥집이다. 안방에서 올라갈 수 있는 다락방이 있는데 부엌과 안방을 연결한 만큼 넓다. 한옥이라 방 천장은 낮고 지붕은 높아서 어른이 다락방에 서 있어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는다. 다락방이라기보다 복층이라고 생각하면 상상하기 쉽겠다. 나는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이 다락방에서 글을 쓰며 지냈다.


그런데 요즘 다락방에서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요즘에는 도시에 살던 때처럼 읍내 카페로 나와 글을 쓴다. 아무리 글쓰기 좋은 다락방이라고 해도, 집은 글쓰기에 위험한 공간이다. 아이들이라는 짐승(잠잘 때, 재롱부릴 때만 귀여운 짐승)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방에서 컴퓨터나 게임을 하고 지내지만, 언제 다락방을 침범할지 모른다. 아이들을 피해 저녁을 먹고 카페로 나와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쓴다.


마당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다락방에서 내려다볼 때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다락방에서 글을 써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쉽지 않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다락방을 활용하기 위해 올해 중간 벽을 치고, 이중 창문도 달고, 냉난방기도 설치했다. 다락방이 쾌적해지고 나서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아내도 다락방이 좋은지 다락방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잃어버렸다.


언젠가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하더라도 이 한옥집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그때는 사는 공간이 아닌 정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작업실로 꾸미고 싶다. 사는 공간과 일하는 공간은 구분되어야 한다.


혼자 작업실로 쓰기에는 넓은 편이어서 시골에서 글 쓰거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한다. 함께 읽고, 쓰고, 그리고, 토론하는 그런 시골의 작은 배움 공동체. 고미숙 작가가 이미 도시에서 실현한 '감이당' 같은 그런 공동체를 시골에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아직 그 꿈은 멀어 보인다. 그저 막연히 그런 풍경을 그려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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