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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04. 2020

다시 에세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2020/09/27

다시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내가 왜 에세이를 쓰지 못하는지 알게 됐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에세이를 쓰지만 내 보이지 못했다.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비공개로 된 에세이 수십 편이 쌓여 있다.  언젠가부터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것이 두려워졌다.


여전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는 한 편의 글도 써내지 못한다.


이제는 그동안 썼던 글을 조금 다듬어서 누군가에게 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글쓰기 일기'라는 나름의 장치를 마련해뒀다. 일기 형식이니까 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드러내도 된다. 읽는 사람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지만, 일단 나를 표현해보기로 한다.


유명해지면 피곤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아직 유명해지지도 않았고, 유명해진다고 정말 그런지도 모르면서 하는 걱정이다. 쓸 데 없다. 억지로 유명해지려고 하다 보니 자신을 꾸미게 되고, 가짜의 자신을 반복해서 내보여야 하는 상황이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글을 쓰면 그렇게 된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사는 삶은 결국 피폐해지더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그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은 존재에 대한 위로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동네 후배들과 함께하는 책 쓰기 모임 덕분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20, 30대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글을 쓰는 경험 자체가 좋은 자극이다. 한 친구는 시골에서 돼지 키운 경험으로 벌써 초고를 완성했고 글을 다듬고 있다. 이 책을 탈고하면 시골에서 스스로 작은 집을 짓고, 그 경험으로 한 권의 책을 쓰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웠다.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알고 실천하는 모습,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는 올해 하반기부터 함께 했는데 벌써 그림책 한 권을 완성했다. 자신의 어두웠던 기억을 동화 같은 그림 속에 담아냈다.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인쇄소에서 한 권에 6만 원을 주고 동화책 두 권을 만들었다. 종이책이라는 실물을 만져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 기억들이 물질화되는 신비한 마법 같다.


순간 나는 어린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혼란스러워 했다. 시골에서 글쓰기 강의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첫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초고도 완성하지 못하고 기획만 수차례 바꾸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서 걱정과 불안이 시작된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렸다는 점이다. 그냥 나의 색깔, 나의 방식, 나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 받은 자극에 감사한다. 덕분에 이렇게 누군가에게 글을 내 보일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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