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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Mar 27. 2020

코로나가 준 여유, 충분히 읽고 쓴다

<글쓰기 일기> 2020/03/27 22:30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덕분에 한 달 반 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 이렇게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처음이다. 


예정됐던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할지 모르겠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매일 벌어지는 변수로 골치 아플 때가 많았는데 덕분에 고민거리도 줄었다. 가끔 계약이나 기획을 위해 미팅이 잡히면 그 약속이 소중해졌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강의 준비를 위해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고, 강의하러 다른 지역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글 쓰고 책 읽기 좋은 시기다. 


도서관은 폐쇄됐지만 다행히 메일로 빌릴 책을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정해준 시간까지 찾으러 가면 된다.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날 때마다 책을 빌린다. 읽고 싶을 때마다 책을 충분히 읽는다. 해야 할 일 때문에 독서를 멈추는 일은 거의 없다.  


매일 30분씩 프리라이팅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쓴다. 글을 더 쓰고 싶을 때는 새벽까지 쓴다. 다음날 일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을 글쓰기 강의'라는 책쓰기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온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올해 안에 출판이 목표다.  


일상이었던 수영장 나들이를 할 수 없게 됐다. 수영장이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았다. 몸이 무거워질 때마다 물에 몸을 담그고 숨이 찰 때까지 수영을 하고 나오면 개운했는데, 아쉽다. 대신 요즘에는 집 근처 호수를 걷는다. 정식 명칭은 저수지지만 호수라고 말하면 좀 있어 보인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저수지보다 호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마을 사람들은 그 호수를 '빼뽀저수지'라고 부른다. 


천천히 호수를 한 바퀴 돌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걷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운동하고 싶을 땐, 빨리 걷고 산책하고 싶을 땐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된다. 그러다가 글쓰기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영삼이 식기 전에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가서 글을 쓴다. 매일 출근하듯 가는 카페가 있다. 지금도 그 카페에서 글을 쓴다. 오늘 하루에만 이 카페를 두 번 왔는데 낮에는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글을 썼다. 오늘은 글발이 붙어서 집에 가서 새벽까지 다락방에서 글을 쓰고 싶다. 


코로나가 준 여유,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노마드. 노동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 거기에 코로나가 휴식이라는 덤을 줬다. 


'그렇게 살아서 되겠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삶의 질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그렇게 따져 묻는 건 부러워서 그렇겠지. ㅎㅎ


덧붙이는 말// 오늘 낮에 고미숙 작가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을 완독했다. 작가는 21세기에 가장 최적화된 삶의 방식은 백수라고 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내가 그 방식 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백수라는 건데, 고미숙 작가에 따르면, 진정한 백수는 노동하지 않는 대신 '경제활동'을 하며 시험 공부 대신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공부를 즐긴다. 그리고 글쓰기는 필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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