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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Jul 09. 2019

운문형 인간과 산문형 인간

글쓰기 일기/ 2019년 가을 쯤

요즘 내 글쓰기 강의를 듣는 마을 주민들의 글을 읽으며 피드백하는 일이 즐겁다. 글을 더 잘 쓰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분들이 글쓰기에 대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힘을 북돋는데 신경을 더 쓴다. 칭찬과 함께 글 쓸 맛이 나도록 글의 발전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해준다. 신기하게도 그분들 글에 붙인 조언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예를 들어 있었던 사실만 나열한 글에 '스스로 생각과 느낌을 오롯이 들여다보세요. 그 느낌과 생각을 글로 풀어보세요. 이 글은 선생님만의 글이니까요.'라고 댓글을 단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사실 내가 제일 못하는 글쓰기 영역이다. 1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과 감정을 글(기사)에서 숨기는 능력만 키웠다. 그런 습관이 손에 뱄다. 기자를 그만두고 '마을스토리텔러'라는 직업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내 감정과 생각을 감췄다. 내 글이라기보다 공식적인 글이었다. 돈을 받고 쓰는 청탁 글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럴수록 나의 글쓰기는 더욱 빈약해졌다.


요즘 내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나는 '나'보다 '남'에게 맞추는 인간이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더 신경 썼다. 나에게 소홀했다. 글쓰기도 나에게 소홀했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생각은 그나마 괜찮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생각을 드러내는 글은 그래도 잘 쓰는 편이다. 논리적인 글말이다.) 어릴 때는 분명히 내 감정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느끼는 대로 엄마에게 전달했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너무 일찍 철이 들어, 엄마에게 떼쓰지도 못하는 착한 아이로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떼를 쓰는 것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아이들의 표현 방법이다.)


오늘 로컬스토리(내가 동료들과 함께 창업한 회사다)에서 함께 일하는 20대 초반 친구와 글쓰기와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자신이 느끼는 추상적인 을 자신만의 영상으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학 '문학동아리' 시절이 떠올랐다. 글 쓰는 게 좋아 문학동아리에 들어갔지만 나는 문학에 소질이 없었다. 시를 주로 쓰는 동아리였는데 내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시가 시 같지 않았다. 내가 쓴 시는 논리적이었다. 시가 논리적이라니,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소설을 써보려고 했지만 상상력도 부족했다. 나는 수필이나, 비평을 쓰는데 만족했다.


그때 동기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정말 타고난 예술가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욕구가 강했다. 나는 '남에게 어떤 것을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들은 '내 안의 느낌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먼저 생각했다. 표현 방식도 달랐다. 내가 '산문형 인간'이라면 그 친구들은 '운문형 인간' 같았다.


오늘 이야기를 나눈 로컬스토리의 어린 동료도 '운문형 인간'이다. 그 친구도 인정했다. 운문형 인간은 일단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러지거나. 운문형 인간은 약간 천재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운문형 인간은 소수이고, 산문형 인간은 다수였다)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표현이 우선 아닌가. 남에게 무언가 전달해 영향을 미치는 것이 먼저라면 선전이고 프로파간다이다.


운문형 인간에도 단점이 있다. 자기만의 세상이 갇히는 거다. 자기는 표현하지만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산문형 인간의 장점이라면, 타인이 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도 글쓰기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잘 전달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그것이 글쓰기든 영상이든 모든 표현물, 콘텐츠의 기본 아닌가.


그래서 요즘 나는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지금처럼 퇴고도 하지 않은 상태의 초고를 써서 공개할 마음을 먹는 것도 그런 용기를 내는 연습이다. 조금 더 자주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알게 됐다. 역시 가르치면 더욱 깊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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