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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07. 2020

시골 마을에 무료 순환버스가 달린다면

2020년 제2회 충남마을만들기 대화마당 in 아산

시골 어르신과 학생들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농어촌 버스 운행이 줄어들고, 그나마 하루 한두 대라도 운행되던 버스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마을은 늘고 있다. 자가용 없는 교통 약자에게 시골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농촌 주민들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편리하게 갈 수 있는 이동권은 기본권입니다.” 지난 6월 26일 ‘농촌 주민의 이동권과 농촌마을교통’이라는 주제로 아산시 영인면 토정관에서 열린 ‘2020년 제2회 충남마을만들기 대화마당’에서,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은 행사를 시작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동이 제한되면 사람은 고립된다. 사람을 만나지도, 물건을 사지도, 교육 문화 혜택을 받지도 못한다. 시골에 산다고 해서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다. 


이날 대화마당에서 농촌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김원철 충남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은 농촌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을 발표했고, 황민호 옥천신문 제작실장은 주민 주도로 무료 마을순환버스를 운행하는 옥천군 안남면 사례를 소개했다. 운수업체와의 갈등, 법적인 문제 등 쟁점이 도출됐고 충남 지역에 도입하기 위한 고민도 나눴다. 


수요반응형 교통서비스, 정부 적극 지원 


필요한 사람들에게 맞춤형으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수요반응형 교통서비스’는 농촌교통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 이상 버스회사와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정한 노선과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고, 시골 주민들의 생활 패턴에 맞는 대중교통을 디자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김원철 공간환경연구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관련법이 정비되면서 기존 여객자동차 운송업자가 아니더라도 ‘한정면허’를 받으면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운행구역과 방법 등을 정해서 제출하면, 지자체가 6년 이내의 ‘한정면허’를 인가해준다. 예를 들어 면 단위로 마을 순환버스를 운영하고 싶다면 한정면허를 발급받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도시형·농촌형 교통모델사업’을 통해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로 3억 원(국비 50%, 지방비 50%)을 매년 지원받을 수도 있다. 운영 주체별로 △기존 업체가 운영하는 ‘운수업체형’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지역 등 주민 자치가 활발한 지역을 위한 ‘마을자조형’ △지역농협 또는 신협이 운영하는 ‘농협 활용형’ △비영리단체 소속의 셔틀버스를 활용한 ‘비영리법인’으로 나뉜다. 각각의 지역 특성에 따라 유형을 선택하면 된다. 


마을 구석구석을 달리는 도서관 셔틀버스


옥천군 안남면 사례를 소개한 황민호 제작실장은 ‘작은 도서관+마을 무료 순환버스’ 모델을 제시했다. 황 실장은 “도서관도 생기고, 무상버스도 다니고, 면 소재지가 활성화되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남면에 이어 동이면에서도 도서관 셔틀을 활용한 무상버스가 도입된다”며 “이런 모델이 옥천군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남면 주민들은 마을 순환버스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다가 지자체와 운수업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도서관 셔틀버스’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도서관 셔틀버스는 지자체와 업체가 반대할 법적 명분이 없었다. 도서관 순환버스라 매년 3,000만 원 가량의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이 모여 자연마을 중심으로 정류장을 만들고 노선을 짰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행된다. 하루에 9차례, 한 시간마다 버스가 마을 곳곳을 순환한다. 황 실장은 2009년부터 마을 순환버스가 운행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공짜버스 타고 한글을 가르쳐 주는 안남면 어머니학교에 갑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학교 끝나자마자 스쿨버스 타고 집에 와야 하니까 친구랑 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학교 마치고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놀아도 셔틀버스가 데려다주죠.”


우리 마을에도 순환버스가 달릴 수 있을까?


충남에도 마중택시(100원 택시)와 오지·등교 순환버스(마중버스)를 전국 최초로 도입한 아산시를 비롯해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이날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범위를 좁혀 읍·면 단위로 새로운 농촌교통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지 논의가 이어졌다. 


박상우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구입했던 차량을 사업이 끝나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민간 법인이 위탁받아서 마을순환버스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주 청양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교육팀장도 “청양군도 10개 읍·면 중에 8곳의 중심지 활성화 사업이 끝나가고 있다”며 “읍·면 중심지에 건물을 짓고 다양한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여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교통 문제를 어떻게 풀지가 과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원철 실장은 “도시형·농촌형 교통모델사업을 통해 3억 원 내에서 차량구입비, 운전기사 인건비, 사무실 운영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한정면허를 받을 때 운행 범위를 하나의 면이 아니라 인근 면까지 확대해서 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운수업체와의 갈등…협업이 가능할까? 


주민 주도로 농촌교통 서비스를 개선하려고 해도 기존 운수업체와의 갈등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벽이다. 안남면 주민들도 지자체와 운수업체에 항의하는 집회를 여는 등 우여곡절 끝에 마을순환버스 운행을 안착했다. 


김종욱 아산시 영인면 종합정비사업 추진위원장은 농촌 마을을 위한 수요반응형 교통서비스 운영조차도 기존 버스 운송업체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들이 참여해서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창신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사무국장도 “버스 업체의 압박으로 마을 순환버스가 중단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원철 실장은 버스업체를 경쟁 관계로 보기보다 협업을 통해 농촌 주민들의 교통서비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실장은 “평가 과정에서 버스 정비는 어떻게 할지, 차고지 등 기반시설은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이 되기 때문에 운수업체에 점수를 주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과 맞물려 있어 기존 운수업체가 마을의 협동조합 같은 곳에 노선을 넘겨주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을에 적합한 아이디어를 운수업체에 제공해서 함께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를 제안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메인 이미지 출처 : 한겨레신문 2016.4.17자 기사,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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