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어디서든 일하는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한 지 벌써 1년이 지날 때 쯤이었다. 지금은 작은 사무실을 하나 구했지만, 그 때만해도 풀 먹일 땅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처럼, 인터넷이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글쓰고 일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만 해도 거의 매일 아침 찾아가는 카페가 있었다. 귀에 거슬리는 노랫말 없이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큰 창 너머로 눈발이 날리거나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원목으로 만든 책상과 의자는오랫동안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도 팔이 아프지 않을 만큼 높이가 적절했다. 카페 주인도 단골이라면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어도 눈치 주지 않는 곳. 디지털 노마드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충청도 시골까지 코로나 방역 조치가격상되면서 오아시스를 잃었다. "테이크 아웃만 가능합니다." 이 얼마나 삭막한 말인가. 오아시스에서 물만 떠서 그 자리에서 마시지 말고, 나무 그늘에 앉아 쉬지도 말것이며, 물 한 컵 들고 사막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요즘 혼자서 조용히 글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유목민이라고 해서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도는 것은 아니다. 풍요와 안식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그곳에 머물다 떠난다. 이제는 디지털 유목민이 아니라 디지털 메뚜기가 된 것 같다. 잠시라도 앉아 편안히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시험기간 캠퍼스 중앙도서관 자리를 못 잡아, 주인이 있지만 잠시 비어 있는 자리를 골라 메뚜기처럼 점프하며 공부하던 생활을 다시 하게 된 거다.
일단 집은 위험하다. 코로나와 폭설로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이 수시로 놀아달라고 덮친다. 혼자 있을 때도 집은 글쓰기를 무마시키는 적들로 가득하다. 글을 쓰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연다. 글 쓰는 시간보다 요리하고 먹는 시간이 더 길다. 집에서 일하다간 글은 쌓이지 않고 몸무게만 늘겠다. 식탁에 앉아 글을 쓰다가도 따뜻한 방바닥에 몸을 누이고 싶은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 아늑한 집은 널브러져 쉬는 곳이지 자세 잡고 일 하는 곳이 아니다.
한동안 도서관에 정을 붙이려했다. 건축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최신식 도서관은 넓고 쾌적했다. 하지만 자유롭지 않았다. 디지털노마드의 생명은 자유로움 아니던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도서관 공간에 울려 퍼진다.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수험생들이 이미 진을 치고 눈치를 준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적절한 백색 소음도 있는 공간을 찾아서 글을 써보지만 이상하게 도서관은 정이 가지 않았다.
자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 자판을 마음껏 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다시 헤맸다. 그렇게 찾은 곳은 맥도날드.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되지만, 이곳은 앉아서 먹을 수 있다. 명색이 디지털노마드인데 장소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일단 커피 같은 음료만 시켜서는 앉아 있을 수 없다. 햄버거 같은 씹을 것을 주문해야 앉아있을 자격이 주어진다. 참으로 촘촘한 방역 수칙이다. 결국 내 입맛에는 맞지도 않는 미국식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시킨다. 그래, 혼자서 글 쓸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제한되어 있다. 손님이 많아지면 죽치고 앉아 있기 민망해진다. 어느 곳이든 눈치 보지 않고 일하는 것이 또 디지털노마드의 매력인데 벌써부터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 노트북 충전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 보니, 코로나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디지털 노마드족이 와서 장시간 이용해도 눈치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도구처럼 보였다. 마음을 놓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생각보다 잘 써진다.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틀 정도 왔다가 도저히 매일 햄버거를 먹을 수 없어 또다시 점프할 곳을 탐색한다.
메뚜기 생활 끝에 정착할 만 곳을 찾았다. '스터디 카페'라는 신문물이다. 스터디 카페도 분위기가 제각각이었다. 모양만 스터디 카페지, 독서실 같은 곳도 있었다. 적막을 깨는 노트북 자판 치는 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조용히 하라는 압박이 가득 담긴 포스트잇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의자는 조용히 끌어주세요', '음료와 소리 나지 않는 과자만 먹을 수 있습니다.' 소리 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과자라니, 녹여먹을 수 있는 바나나킥이라도 사올 걸.
중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독서실 총무처럼, 무서운 눈빛을 가진 스터디 카페 총무는 처음 와서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눈치를 줬다. 그래도 4시간을 선결제한 것이 아까워서 그냥 닥치고 썼다. 이용객이 많지 않아 5인실로 된 작은 방을 혼자 썼다. 다행히 마음껏 자판을 두드려도 괜찮았다.
다음날 새로운 스터디 카페를 찾았는데 독서실보다는 카페에 좀 더 가까웠다. 이곳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들로 가득했지만 노트북 치는 소리는 다행히 적절한 백색소음(음악 대신 적막함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틀어놓은 소리였다) 속에 묻혀서 거슬리지 않았다.
스터디 카페에 적응하면 코로나 시국에도 글을 꾸준히 쓸 수 있겠다. 굳이 바다나 섬으로 글쓰기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겠다. 그런 곳은 가봤자 글은 쓰지 않고 밤새 낚시하고 술을 마신다. 스터디 카페는 시간별로 요금을 미리 결제하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라도 앉아 있어야 하니 무엇이든 쓰고 읽는다.
공간이 가진 힘이 있다. 편안한 책상과 의자, 적절한 백색소음, 맛 좋은 커피 한잔 등 공간에 따라 집중력이 달라진다. 그런데 절실하면 공간은 상관없다. 요즘 나에게 그런 절실함이 없다. 그렇다 보니 디지털노마드랍시고 글 쓸 공간 탓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절실함만으로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절실할 수 있겠나.
그래도 메뚜기 생활을 하면서 글 쓸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게 됐다. 선택지가 많아졌다. 그 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공간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디지털노마드의 특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