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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맑음 스튜디오 Dec 12. 2022

일에 대한 내 자세를 브랜딩 하기

캘리그라피작가, 디자이너, 개발자. 나는 무엇을 집중하기로 했는가.

  "넌 나중에 무슨 개발자가 되고 싶냐"

누가 물었다. 내게 미래를 물었지만, 나는 과거 나의 사물들을 돌아보았다. 캘리그라피로 수년간 작업하고 전시도 종종 하다가, 사진도 해보고 싶어서 잠깐 발만 담갔다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로 상경해 개발을 시작하여 주니어 정도의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지내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무슨 개발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질문을 스스로에게 달리하여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스물이 넘어 법적으로 노동을 하며 무슨 일로 행복을 느꼈는지 말이다. 쪽갈비 집 알바, 만화방 알바, 간판집 알바, 이력서 사진 보정 알바, 책 디자인도 일도 한 번 했고, 캘리그라피 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개발자. 적어보니 꼬깃꼬깃한 지폐부터 그럴듯한 월급까지 받아왔다.


  직업과 프로젝트로 정리했을 때는 '무슨 일이 행복한가'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개발자를 하면서도 디자인이 재밌었고, 캘리그라피로 만난 사람들과 계속 인사를 나눴다. 다 재밌어서 했다. 캘리그라피를 보고 '나는 저렇게 못쓸 것 같아'라고 하지 않고 재밌어서 시작했고, 코딩도 어려워 보인다고 주저하지 않고 재밌어 보여서 했다. 외주도 돈도 돈이지만 재밌어 보이면 수주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도 내가 공동체를 만들고, 모임을 만드는 게 재밌어서 했다.



  나는 일이 재밌어야 하는구나! 나는 뭘 하느냐가 즐거운 인간이 아니구나!

이걸 최근에야 인정했다. 내가 개발자로 살아가면서도 뒤에서는 포스터, 엽서를 만들고, 셀프브랜딩인 '서로맑음'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리브랜딩을 거듭하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서로맑음

서로맑음은 내가 2015년부터 진행한 셀프 브랜딩이다. 이름의 한자를 각각 한글로 풀어 순우리말처럼 따왔다. 당시에는 캘리그라피가 주력 콘텐츠였기 때문에 인사동에 잘한다는 도장집에 가서 판 낙관을 심볼로 사용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만든 심볼로 셀프 브랜딩을 했다. 그 뒤로 리브랜딩을 몇 번 했지만 이때 사용한 컬러인 #333399 #ededed의 색상은 유지하고 있다.



  레터링으로 사용했던 로고에서 심볼로 제작한 것은 2020년. 서로맑음의 철자로 변경했다. 이때는 '인터렉션에 강한 개발자',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로 보이기 위해 SVG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엔 심볼을 교차, 과정, 결과, 강점을 모티브로 한 3D로 제작하여 만들었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읽는 거냐고, 게임 패드의 아이콘 같다는 평이 많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경직된 심볼 같고 'ㄹ'에 해당하는 심볼이 그리기 어려웠다. 그리고 움직이며, 인터렉션 하는 3D 그래픽이어서 인쇄 등의 매체에선 활용하기 어려웠다.


2023년 서로맑음 새 심볼 기본형


  새 심볼은 앞서 고민한 것들을 다르게 접근했다. 첫째로, 내가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고 느끼길 바랬다. 그리고 "두 눈으로 집중하고 양손으로 쓰이는 것은 모두 수단이며, 재밌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정신이 느껴지길 바랬다. 그렇게 삐뚤빼뚤한 선으로 양손과 집중하는 두 눈을 그린 심볼을 완성했다.


새 심볼 기본형에서 덧대어 모두 심볼로 사용하는 플렉서블 아이덴티티이다.


  비어있는 공간이 많은데 이는 기본형이고 이 기본형에 그림을 덧대어 다양한 심볼을 만들어내는 FI(Flexible Identity:플렉서블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이다.


  두 눈, 양손에 무엇이든 담길 수 있으며, 내가 어떤 개발자에, 어떤 디자이너에 속한 다기보다 문제를 정성스럽게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소통자이고 작업자임을 표현했다.

  무엇으로 나를 명명하기보다 모든 일에 내가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각종 스테이셔너리를 제작하고, 웹사이트도 이 정신에 부합하여 계속해서 '서로맑음'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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