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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Aug 08. 2021

저, 퇴사할게요

5. 그냥 때려치고 조금 쉴래요

점점 먹는 약이 빠르게 늘어났다.

알프람을 시작으로 SSRI 계열 항우울제가 추가되고, 알프람 용량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그 유명한 졸피뎀도 추가됐다. 한 달 만에 늘어난 약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일 년 후는 어떨지 아득했다.


능동적으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죽는다고 해도 별로 아쉽지가 않았다. 사는 게 피곤하고 재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별로였던 회사는 다닐수록 더 별로였다. 3주가 지나자 내가 부장보다 많이 아는 것들이 생겼다. 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나에게 부장이 질문을 하고, 내가 답을 해주는 희한한 일이 자꾸 일어났다. 대학원 이전에 꽤나 큰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왔다는 이유로, 또 이 전 회사는 본인들 회사처럼 '진짜 중요한 일'을 하는 회사가 아니었다는 이상한 이유로 5년 차 직장인인 나를 자꾸 사회초년생이라고 부르며 가스 라이팅 했다.


상무는 예민한 사춘기 학생 같았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꾸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한 번은  본인이 찾을 때 내가 화장실을 가서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전화해서 "너 제정신이냐?"며 소리를 빼애애액 질렀다. '이 아저씨는 뭔데?' 하는 황당함이 몰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대기업이라는 곳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니, 한심하고 씁쓸했다.


며칠 후 한 직원으로부터, 전에 내 자리에 있던 직원 두 명도 모두 우울증에 걸려서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번아웃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됐던 이 모든 고통과 불안에 회사가 자꾸 기름을 부었다. 상무의 욕지거리와 고함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온 날에는 고슴도치처럼 신경이 쭈뼛 곤두섰다. 이대로 가다간 인생이 도저히 손 쓸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겠구나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 삶이 지옥일 때, 나를 그 지옥에서 구해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구해내려면 퇴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사가 처음은 아니었던지라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진 않았다. 퇴사라는 건 밥줄을 내 손으로 끊는 일이어서 스스로를 자꾸 의심하게 된다. 항상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남겨진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을 보며 약간의 패배감과 원인 모를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거기다 한 달 만에 손절하듯 도망치는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고 말하면, 나를 오래 알던 친구들은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생겼구나, 하면서 우선 내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데 왜?", "그만둘 거면 이직을 하고 그만둬라", "원래 회사 생활이 다 이렇다. 다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너무 유난하다."부터 "**이 너는 정말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까지 온갖 종류의 걱정을 빙자한 오지랖이 쏟아졌다. 자꾸 나를 방어하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피곤해서 정말 친한 친구들 이외에는 연락을 끊었다. '충고'에도 종류는 많아서, 이게 정말 상대의 상황을 고려해서 진심으로 한 충고인지, 아니면 충고를 빙자한 자랑 내지는 본인의 우월함 증명인지, 혹은 그냥 별생각 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을 대충 한 것인지 가려 들어야 할 때가 많다.


퇴사 의사를 밝히자 역시나 인사부장은 '너 같은 사회초년생이 이렇게 중요한 회사의 중요한 자리를 맡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반박할 힘도 없었다. 이젠 무슨 미친 소리를 하든 내 알 바 없으니 그저 나를 빨리 놓아주기만을 바랬다.


상무는 내가 본인의 '뒤통수를 때렸다'라고 했다. 온갖 회유에도 내가 퇴사 의사를 굽히지 않자 급기야는 '이렇게 관두면 앞으로 너의 커리어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며 협박을 시작했다. 회사 밖에서는 지나가는 아저씨 1에 불과한 본인이 어떻게 내 커리어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건지, 그 자신감의 원천이 궁금했다. 뭐라고 하던 "알고 있습니다, 네, 네"로 응수하자 상무는 약이 바짝 오른 것 같았다. 근데 내가 이 사람 약을 올려서 뭐하겠나. 산다는 일에 너무나 지쳐버린 상황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갈 힘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상무는 끝까지 선심 쓰듯 하루 더 생각할 시간을 주겠으니 생각을 바꿔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퇴사 의사를 밝힌 후로도 나는 한참 동안 회사를 더 다녔다. 상무는 보란 듯이 연봉을 2천만 원 넘게 올려서 같은 공고를 냈다. 이후엔 인수인계를 해야 하니 후임이 뽑힐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근무한 일수가 얼마 되지 않아 물리적으로 인수인계할 내용이 없다고 하니 '그건 니 사정이고 새로 들어올 사람과 회사 입장은 다르다'라고 했다. 언제까지 후임을 뽑아줄 거냐 물으면 그건 한 달 반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알 수가 없댔다. 역시 미친 사람들은 미친 대응으로 응수하기 전까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내 무기력과 불안과 우울증과 싸워내는 동시에 이 사람들과 같이 진흙탕에서 구르며 내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 벅차고 피곤했다. 앞선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더더욱이나 회사에서 우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우울증으로 내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에서 침착하게 싸워내고, 9시간의 근무시간을 버텨낸 후 퇴근길에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바닥을 쳐서 엉엉 울면서 집에 와서 약을 먹고, 다음 날에는 또다시 약의 힘으로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후에서야 나는 자유의 몸이 됐다.


버텨내는 걸 유독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버티지 못하는 걸 두고 '끈기가 없다'거나 '나약하고 유난하다'라고 한다. 스트레스 관리를 못해서 그렇다, 요가를 해라, 유튜브에서 바디스캔 영상을 들어봐라, 타트체리를 먹어봐라, 몸이 편해서 그렇다, 군대 가면 불면증이고 우울증이고 다 사라진다. 저땐 이 모든 얕은 '아는 체'들이 다 듣기가 싫었다. 30년 넘는 인생에서 난생처음으로 한 번 '끈기 없는' 선택을 해봤을 뿐인데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쏟아졌다.


나도 사실 우울증이 이렇게 힘든 병인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피상적인 조언은 오히려 나를 더 질식하게 했다. 제일 힘든 순간에 나를 구해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다들 약물 중독이 될 거라며 먹지 말라고 말렸던 정신과 약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면 지금까지는 해 보지 않은 방식의 선택을 해야 한다'며 퇴사를 추천한 의사 선생님과, 나를 견뎌낸 나 자신뿐이었다.


결과적으로 퇴사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걸 잡기 위해서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걸 완전히 놓아야 한다. 우리는 다들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어떤 기회는 지금 가진 걸 전부 놓아버려야지만 열린다. 인생은 새옹지마여서 끝까지 살아보기 전에는 이 일이 복(福)인지 화(禍)인지 알 수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내 삶에서 나를 구원할 건 나뿐이고, 인생의 길고 짧은 건 지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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