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혁명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 『안티오이티푸스』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어린 시절부터 싸웠다. 골목대장부터 시작해서 프로 복서까지. 싸우면서 나름의 싸움의 법칙 하나를 알게 되었다. 흥분하면 진다. 흥분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얼치기들의 싸움일 때 뿐이다. 얼치기들의 싸움은 언제나 기세 싸움일 뿐이기 때문에 흥분하는 건 도움이 된다. 더 흥분하는 이가 기세를 잡을 수 있으니까.
‘꾼’들의 싸움에서는 이야기 다르다. 흥분하면 필패다. 흥분하면 체력 소모도 심하고 몸도 굳기 때문이다. '꾼'들의 싸움 성패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냉정함이다. 차갑게 싸우는 이들이 이기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싸우는 이가 이기게 마련이다.
서른 중반에 시작된 새로운 싸움은, 마흔 중반을 넘었는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제 정말 싸우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어린 시절보다 지금은 싸움의 판이 더 커졌다. 사적인 싸움의 시간을 지나 공적인 싸움의 시간에 서 있다. 공적으로 싸우겠노라, 마음먹었을 때,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싸움의 법칙’을 알고 있었으니까. 영도에서,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냉정하게 싸우려 했다.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싸우려 했다.
싸움의 판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무엇인가 자꾸만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공적인 싸움 판에서 시간을 조금 보낸 뒤에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사적인 싸움과 공적인 싸움은 근본적으로 다른 싸움이다. 사적인 싸움에 ‘냉정함’이 필요하다면, 공적인 싸움은 하나의 덕목이 더 필요하다. ‘즐거움’이다.
공적인 싸움은 큰 싸움이다. 큰 싸움은 때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적인 싸움에 즐거움이 꼭 필요한 이유다. 긴 시간 싸우려면 반드시 기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쁨이 없다면, 몇 시간 길어야 몇 일을 싸울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적국을 유린할 자유를 주는 것도 그래서다. 즐거움이 긴 시간 처절한 싸움을 유지할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기쁘게 싸울 수 없다면, 큰 싸움에서 이기는 요원하다. 공적 싸움의 무게에 이기못해 엄숙주의에 짓눌려 이는 이들의 싸움의 필패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흥분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기쁘게 싸우고 싶다. 2024년 12월 8일, 윤석열 정권의 친위 쿠데타에 맞서, 여의도에서 함께 싸운 이들과 근사한 코스 요리를 먹으며 즐겁게 떠들다 돌아왔다. 새로운 ‘싸움의 법칙’, “항상 기쁘게 싸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