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위치한 ‘바티칸’에는 흥미로운 작품이 하나 있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다. ‘바티칸’에 있는 예술 작품들은 대부분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과 같은 신실한 종교성에 기반에 작품이다. 그런데 마티스는 평생을 무신론자(혹은 불가지론자)로 살아온 예술가다. 그런 예술가의 작품이 신앙(기독교)의 상징과도 같은 ‘바티칸’에 심지어 그것도 별도의 공간까지 마련해서 전시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심정’적 존재이다. 그리고 이 ‘심정’ 의해 결국 ‘신’을 사랑하거나 ‘나’를 사랑하게 된다. ‘신’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신앙’으로 가닿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예술’로 가닿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마티스의 작품이 바티칸에 전시될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혼란하고 불투명한 ‘심정’적 존재인 인간이 이르는 두 영역(신앙과 예술)은 끝내 하나로 다시 이어지게 되는 것 아닐까?
인간이 ‘심정’적 존재라면, 인간에게는 ‘예술’은 ‘신앙’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예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자기애’란 자신의 ‘심정’을 가장 중시하는 일이다. 예술가들은 왜 연주를 하고, 왜 그림을 그리고, 왜 글을 쓰는가? ‘이성’적으로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심정’적 요소들, 즉 희열과 불안, 희망과 절망이 뒤엉킨 혼란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예술가는 자신의 ‘심정’을 가장 우선하는 이들이다. 이에 대해 20세기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했던 잭슨 폴락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든 훌륭한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예술가는 누군가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연주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끝내 ‘타인’이라는 ‘언어(관계)’ 혹은 ‘언어’라는 ‘타인(논리)’를 배우지 못한 아이인 셈이다. 이것이 많은 예술가들이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했던 이유였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예술가가 세계(타인·언어)와 전혀 단절된 존재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결과(작품)가 타인에게 어떤 정서적·사회적 유용을 줄 수 있다. 마티스는 예술이 자신의 고통을 배설하는 일이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에게 평온과 기쁨을 주는 ‘안락의자’가 되기를 바랐다. 또 피카소는 “회화(예술)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에 맞서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쟁의 도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예술의 간접적(부가적) 효과이거나 예술가의 자아 확장 효과일 뿐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