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by 황진규의 철학흥신소

“Under Destruction(파괴 중)!”


2026년, 뮌헨 안보 회의 슬로건이다. 지금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1·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Under Construction(공사 중)’ 상태였다. 두 번 참혹한 전쟁을 계기로 촉발된 반성과 성찰로 세계가 공존할 수 있는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Under Construction(공사 중)’ 시대는 저물고, ‘Under Destruction(파괴 중)’ 시대가 도래했다.


세계적인 재난인 ‘트럼프’는 ‘나(우리)만 잘 사면 된다’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를 불러왔다. 이 불길한 바람은, ‘다 함께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쌓아 올린 세계 질서를 급격하게 파괴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세계적 규범과 가치, 질서가 급격하게 ‘파괴 중’인 시대에 진입했다. 이는 우리와 상관없는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있다.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곧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처지에 놓였다. 프랑스 정부는 2026년부터 외국인(비유럽연합) 출신 학생의 등록금을 16배 인상했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주었던 주거지원마저 중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가 불러온 각자도생의 바람에 지성과 관용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던 프랑스마저 휩쓸린 셈이다. 이런 세계의 변화는 시차가 있을 뿐, 우리네 개인적 삶으로 곧 파고들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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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와 ‘너’가 공존하기 위한 가치와 질서가 모두 ‘파괴 중’이다. 바야흐로, ‘야만의 시대’가 열리는 중이다. 이 ‘야만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기보존의 존재다. 즉, ‘나’와 ‘나’에게 유익한 것들을 지키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자기보존보다 더 상위에 있는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근대 국가론을 창시한 토마스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걷거나 말하거나 때리거나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행동이 일어나기 전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단서들을 보통 노력Conatus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노력이 그것을 야기하는 어떤 것을 향해 있을 때 욕구 또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 그리고 노력이 어떤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나타날 때 일반적으로 혐오라고 부른다. … 하나는 다가가는 운동을, 또 하나는 멀어지는 운동을 의미한다.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코나투스’의 존재다. ‘코나투스’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활력(노력)을 의미한다. 홉스의 ‘코나투스’에는 두 가지 운동이 있다. “하나는 다가가는 운동, 또 하나는 멀어지는 운동”이다. 홉스는 전자를 ‘욕망’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혐오’라고 부른다. ‘코나투스’의 두 운동인 ‘욕망’과 ‘혐오’을 통해 자기보존이 가능해진다. 이는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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