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회사에 사내 카페를 위탁받고, 카페를 운영했었다. 불원간 끝날 것 같았던 작지만 거대한 이 세균들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동요처럼 길고 길게 꼬리를 물고 자꾸자꾸 지구를 돌았고, 결국 우리 집 두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도래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일상인 듯 살지만 사실 일상이 아닌 하루하루가 시작이 되었다.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워킹맘에서 전업주부로 다시 돌아온 이 자리가 처음에는 편안했다.
사내 카페에는 하루 300명의 많은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봇물 터지듯 몰려오면, 정말 얼이 빠질 정도로 신명 나게 커피를 내렸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지만 신나고 즐거웠다. 한데 사실 마음 한편엔 집에 있는 아이들이 불안했다. 처음엔 시어머니가 오셔서 봐주셨다. 그러나 그것도 한 달을 버티시고는 시어머니도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화초처럼 생기를 잃으셨다. 더 이상은 봐달라고 졸라 댈 재간이 없었다.
아침 식사를 챙기고 곧 큰 아이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옆에 붙어 앉아서 책도 펴주고 같이 수업을 듣다가 차츰 스스로 혼자 온라인 수업을 하였다. 유치원 다니는 둘째 서희는 오빠 옆에서 처음엔 오빠를 부르며 놀자고 조르다가 차츰 오빠 옆에 앉아 그림을 끄적이며 자기만의 시간 보내기 방법을 터득했다.
식탁 의자에 앉아 오도카니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여러 가지 생각이 일시에 머물렀다.
일상인 듯 모든 것이 돌아오면... 나는 더 이상 나의 일상이던 카페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는데 어쩌지... 아슴푸레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던 나의 모습이 다시금 그리워졌다. 마음이 납작하니 비어져 나갔다.
이런 상념에 젖어 있는 나에게 서희가 살며시 다가왔다.
"엄마, 나 이거 그렸어요."
"우리 서희, 유치원에 가고 싶구나?"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의 눈에서 나와 같은 짙은 농도의 아련함이 느껴졌다.
"엄마, 나 꽈배기 먹고 싶어요."
"어? 꽈배기??"
서희는 늘 빵집에서 사 먹는 빵을 먹으면 바로 배가 아파서 한참을 웅크려 '배 아파!'를 외쳤다. 그래서 나는 우리 쌀가루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손잡이 조차 다 빠져 없어진 친정엄마의 오래된 오븐기를 가져와서 종종 식빵을 구워냈다. 쌀가루와 좋은 버터, 비정제 사탕수수 가루로 내가 집접 구운 빵은 서희에게 딱 맞았다. 그런데 그런 서희가 오늘 꽈배기가 먹고 싶단다.
"그래? 그럼 엄마가 유튜브로 공부해서 만들어볼까?"
맞다.
나는 사실 제과제빵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다. 커피는 자신 있어서 카페를 운영하고도 디저트류에 항상 애를 먹곤 했다. 그간 집에서 몇 번 구운 식빵도 유튜브를 보고 하다가, 서툰 나머지 발효시간을 초과해 쉰내가 풀풀 나는 빵을 구워 내곤 했다. 그래도 즐거웠던 건 이 무료한 나의 시간을 뭔가 다른 열정으로 쏟아내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뭐든 닥치는 대로 도전하긴 했는데... 그게 바로, 빵이 되었다. 서희의 배앓이를 절대 두고 볼 수 없던 모성에서 나온 귀결이었다.
유튜브로 꽈배기 만드는 동영상을 여러 개 본 뒤에 본격적인 꽈배기 만들기를 시작했다.
당연 아이들도 함께 했다. 이게 뭐 체험학습이지 싶은 마음에 열심히 함께 만들었다.
발효를 시킨 반죽을 길게 늘어 문지르다가 꽈배기를 꼬는데, 꼬면 다시 풀리고, 꼬면 다시 풀린다. '와, 이걸 이렇게 꼬기도 힘든 거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순간 집에 있으면서 점점 꽈 들어가던 나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더없이 친절하고, 더없이 다정한 엄마였으나 며칠이 가지 않아 잔소리가 잔뜩 날이 서서 아이들을 따갑게 따라다녔었다. 그러다가 풀리는 방법은 식빵 반죽을 하고 오븐기에서 빵이 구워 나오는 포슬포슬한 냄새였다. 다행히도 그렇게 단번에 확 풀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