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대를 잇는 고서방 스토리 - 오지라퍼의 딸 오지라퍼
by
Hazelle
Jul 26. 2025
내가 낳았지만 애 셋이 다 다르다고 했잖아
그 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나온 이 아이가 제일 특이한데
언니들은 안하던 짓을 좀 많이 하는 편.
아기때 부터 바비는 집어 던지고
로보트, 자동차, 공룡에 환장하더니
옷도 항상 남자 같이 입으려 하고
발레는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농구인 아이다.
나와 심하게 반목을 일으키는 부분은
각종 '서프라이즈'에 미쳐 있다는 점인데
킨더 초콜렛은 물론이고
마트에 가면 있는 대놓고 사기치는 기계
1유로, 2유로 넣고 뺑뻉이 돌리면 조잡한 플라스틱 공이 나오는 그 기계에 환장했었음.
그래...
이렇게 생긴거.
알지?
이건 어떻게 전세계 공통인 거야?
그리고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나 흘러도,
AI나오고 스마트폰 나오고 기술 겁나게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건재한 거지?
1유로 넣으면 좀 작은 공 나오고
2유로 나오면 두 배로 큰 공이 나와.
그랬거나 말거나 열어보면 싹 다 쓰레기임.
2유로짜리는 1유로 보다는 쓸만한 게 아니라 더 큰 쓰레기일 뿐.
그래,
한동안 돈만 생기면 마트에서 몰래 이 기계 앞에 가 앉아 있는
꼬마 때문에 많은 분쟁이 있었지.
그래봤자 또 쓰레기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
고집이 여간 센게 아냐.
누구 자식 아니랄까봐 드럽게 말 안 들어.
더 기가 차는 건
그렇게 돈 날리고 반드시 운다는 거야.
내가 말렸잖아?
그런데도 나한테 원망해.
왜 자기를 더 말리지 않았냐고 해. 헐...
마치 엄마가 그리 뜯어 말려도 이상한 놈이랑 결혼해 놓고는
나중에 왜 더 말리지 않았냐 하는 그런 정신 나간 어른 여자들이랑 뭐가 달라.
다행히도
나이는 똥구멍으로 먹는 건 아닌가봐?
열 살쯤 되어가니 절대 이 기계 앞은 가지도 않더라고.
그렇게 이 사기 쓰레기 기계는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나와는 상관없는 기계가 되었는데
며칠 전,
마트에 갔는데 아니 이 정신 나간 것이 또 이 기계 앞으로 가고 있어.
이제는 등짝을 한 대 때려야 할 때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지.
가까이 가서 보니까 기계 앞에 이미 돈 넣고 레버를 돌리고 있는 일곱 살 쯤 된
남자애 옆에서 뭐라고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뭐가 나왔으면 좋겠어?"
남자아이 : 글쎄... 자동차!
"음... 그럴 수도 있지."
남자아이 : 아니면 비행기!
"그래, 그것도 나올수도 있지."
남자아이는 시큰둥하게 뭔가 초치는 발렌티나가 마음에 안 드나봐.
옆눈으로 흘기더니 기대에 잔뜩 찬 표정으로 조잡한 플라스틱 공을 열기 시작해.
아, 그거 알아?
이 플라스틱 공은 잘 열리지도 않게 되어 있음. ㅋㅋㅋ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스릴과 서스펜스의 연속임.
드디어 공을 열었더니
화학본드 냄새 확 풍기는 비루먹은 공룡이 들어 있어.
좀 전의 반짝이던 눈은 온데간데 없고
실망의 바다에 빠진 남자아이는 '하....' 하고 조그맣게 한숨을 쉬어...
그러자 발렌티나가 그 아이의 어꺠를 두드려 주면서
"괜찮아, 너의 그 2유로는 이 공룡을 만나기 전까지의 두근두근한 행복값이야.
그리고 이제 알았지? 이번만 재수 없어 그런게 아니야.
나 이 기계에 뜯긴 돈만 다 모았어도 정품 피카츄 이만한거 샀을거야.
내 말 믿어.
다음에 또 해봤자 이 정도의 쓰레기를 만나게 돼.
그리고 점점 두근거리지도 않게 돼.
이번 한 번 잘 두근거렸으니까 너의 2유로는 적어도 가치 있었어."
우선은 내 딸이 다시는 저 쓰레기 뽑기에 돈을 갖다 버리진 않겠구나... 안심했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하는데
돌아보니...
나도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 있던 저 조잡한 쓰레기 기계에 돈을 뜯긴 적이 있었더라.
그리고 아이의 말이 너무 맞더라고.
맞아,
뭐가 나올지 모를 때의 그 두근거림에 백원을 바친 거였어.
그리고 이런 짓은 하는 게 아니라는걸 배웠으니
그 백원은 헛되지 않았었네.
keyword
아이
공룡
1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Hazelle
프랑스에 사는 작가. 세 딸을 키우고 있고, 이태리계 프랑스인 남편과 살고 있으며 원도 한도 없이 연애를 실컷 해보았고 글을 쓸 때 제일 행복합니다. 무조건 재미있는 글만 씁니다.
구독자
224
구독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작가의 이전글
그들이 주인이다...
고서방 스토리 2025 - 의외로 용의주도한...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