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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이룸oi Nov 10. 2022

04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 출산

적극 출산, 육아 권장하는 이야기

이전 글까지 읽고 고개를 갸웃하실 수도 있지만 분명 이 글은 적극 출산을 권유하는 글이 맞아요. :)

임신, 출산, 육아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 안에서 제가 뭘 얻고 왜 출산과 육아를 권장하게 되었는지 전부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험난한(?) 현실을 먼저 공유해 봅니다.


배는 점점 남산만하게 불러오고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어요.

주변 지인들과 유튜브를 통해서 어떻게 출산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혼자 시뮬레이션을 열심히 돌려봤어요. 여자의 출산 경험은 마치 남자들의 군대 경험과도 같아서 출산 얘기를 무용담처럼 나누곤 해요. 그리고 그 경험은 어찌나 다양한지 만 명이면 만 개의 무용담이 나올 정도로 하나도 겹치는 내용이 없었어요. 출산을 수학 공식처럼 보편화해서 제 출산에도 대입을 하고 싶었던 저로서는 어찌나 실망스럽고 겁이 나던지요. 더구나 한창 코로나가 심한 중에 출산이 예정되어 있어서 산모 교육이라든지 육아 교육같은 다양한 교육의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글로 배운 지식들만 나날이 늘어가던 중 36주차 정기 검진이 있어서 의사 선생님들 만나기 위해 산부인과에 들렀어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인해 신랑은 주차장 안에서 대기하고 저만 병원에 들어가 선생님께 진찰을 받았어요. 2주 전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검사들을 마치고 선생님께 저는 내진은 안 하냐고 물어봤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요. 내진 도중 질에서 갑자기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의사 선생님도 당황하셨고 저는 더욱 더 당황했지요. 그러면서 선생님께서는 지금 당장 출산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빨리 응급 분만실로 옮겨가자고 말씀을 하셨어요. 너무나 경황이 없던 저는 어찌어찌 주차장에 있는 신랑에게 연락을 하였고 신랑은 눈썹을 휘날리며 병원으로 뛰어들어 왔어요. 다행히 하혈은 멈췄지만 양수 검사와 아기 초음파 검사를 해서 당장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봐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너무도 준비 되지 않은 상황에 당황스럽기만 했지만 점점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말도 안 통하는 영어로 출산 하기 전 꼭 해야 하는 설문 조사를 작성하고, 팔과 배에 심박수를 체크하는 기계까지 설치하고 난 뒤에야 선생님이 검사를 시작했어요.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양수도 오염되지 않았고, 아기의 상태도 괜찮아서 당장 출산할 위험은 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집에 돌아온 뒤로는 만일을 대비해서 출산 가방도 바로 준비했고, 태어날 아기를 위한 용품들과 집 정리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기는 여전히 일찍 나올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혈한지 이틀 만에 양수가 터지면서 또 다시 병원 분만실로 향하게 되었어요. 출산을 하기 위해서 3가지 정도 조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진통이 왔을 때, 두 번째는  저처럼 양수가 터졌을 때, 마지막 세 번째는 하혈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의 문제가 생겨서 출산을 해야 할 때예요. 출산 전에는 양수가 터진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하얗거나 뽀얀 질 분비물 같은 액체가 나오는 걸까 의문이었는데 경험하고 나니 알게 되었어요. 처음 양수가 터졌을 땐 갈색, 검붉은 색에 가까운 피가 먼저 조금씩 새어 나왔어요. 그래서 이게 양수가 터진 건가 긴가민가 하면서 샤워를 했는데 세상에나! 그게 양수가 터진 거였더라구요.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자마자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 내리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제서야 양수가 터졌다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다시 옷을 걸치고 다행히 미리 싸뒀던 출산 가방을 챙겨서 정말 날듯이 병원으로 향했어요. 한 번 터지자 양수는 생각보다 빨리 많이 흘러나왔고 수건을 받치고 차에 탔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차 시트를 다 적실 뻔 했더라구요. 병원에 도착해서는 이틀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했어요. 양수가 터진 게 맞는지 검사를 하는 간호사는 검사기를 가지고 들어오다가 제 침대 시트가 젖은 걸 보더니 테스트할 필요도 없이 양수가 터진게 맞다며 바로 출산 준비를 하자고 했어요. 코로나 와중이었기에 코로나 테스트도 했어요. 그런데 정신 없이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더라구요. 출산 전, 마지막 음식을 뭘 먹을지 신랑과 열심히 생각해 두었는데 다 소용없어져서 근처 한식집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을 신랑이 픽업해서 들고와 병실에 거하게 한 상 차림을 해 놓고 마지막 만찬을 즐겼어요. 2020년 7월 3일 오전 11시쯤 양수가 터졌고 점심을 다 먹고 나니 오후 2시~3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유명한 출산 3대 굴욕이 내진, 관장, 제모라고 하는데 미국 병원에서는 한국 병원과 달리 따로 관장을 진행하지도 않았고 출산 전 음식을 먹지 말라는 지침도 없었을 뿐더러 제모도 따로 안 해 주더라구요. 저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서 출산하기 전 제가 스스로 제모를 했었는데 출산시 크게 도움이 된 건지 안 된건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렇게 마지막 만찬 후 촉진제를 맞았고, 간호사가 손에 잘못 꽂았는지 손이 너무 아프고 부어 올라서 반대편 손에 다시 주사 바늘을 맞아야 했어요. 그렇게 촉진제를 맞고 자궁문은 쭉쭉 수월하게 열려서 촉진제를 맞은지 6시간 즈음 만에 거의 자궁문이 다 열렸다고 하더라구요. 촉진제를 맞고 몇 시간이 지나고 진통제(에피듀랄)를 맞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진통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더라구요. 다들 왜 촉진제를 척추에 맞을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는데 왜 그런지 몸소 실감하게 되었어요.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진통이 느껴졌고 숨도 가빠졌어요. 다시 한 번 출산의 위대함, 모든 엄마들에 대한 존경심이 한 뼘 더 자라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내진이 도대체 뭘 하는 건가 하고 봤더니 간호사가 질 속에 손을 넣어서 질이 얼만큼 열렸는지 손가락으로 길이를 체크를 하는 거더라구요.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당연히 무언가 고도의 발단된 기계나 장비로 출산도 진행되겠거니 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오산이었어요. 내진부터 자연 분만할 때까지는 말 그대로 무언가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 나 혼자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렇게 진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후 10시 반 쯤이 되자 자궁문은 다 열렸고 간호사는 이제 푸시를 시도해 보자고 했어요.


푸시 할 때에 중요한 게 호흡이라고 지인과 유튜브를 통해 배워서 배운 호흡을 써먹으려고 노력했어요. 간호사는 땅콩 모양으로 생긴 큰 쿠션을 가져와서 저보고 양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있으면서 아기가 나오기 좋은 자세를 만들라고 얘기해줬어요. 한국은 분만실에 누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미국의 제가 있던 병원 분만실 안에는 저와 신랑, 그리고 간호사 1명이 전부였어요, 물론 코로나 여파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예요. 세상 원시적인 방법으로 출산을 한다고 느껴졌던 게 이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말 그대로 제가 밀어내는 힘만으로 아기를 낳아야 했기에 신랑은 오른쪽 다리를 잡아주었고, 같이 있는 간호사 한 분은 왼쪽 다리를 잡고 도와주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다 잊었는데 출산 푸시 자세도 어찌나 다양한지 개구리 자세, 나비 자세 정말 다양한 자세를 시도한 것 같아요. 그렇게 두 어시간 푸시를 진행하다가 너무 지쳤던 저는 이렇게 푸시를 하는 도중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봐요. 눈을 떠 보니 안쓰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신랑과 간호사가 보였어요. 그렇게 눈을 뜨자마자 다시 힘을 내서 푸시를 도전했는데, 사실 이 일은 신랑 말고 아무도 모르는 얘기인데요. 너무 힘을 세게 줬던 나머지 나오라는 아기가 아닌...다른 게 나와버렸더라구요. 이 상황에서 저는 제 힘이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시 푸시에 집중해야 했어요. 간호사 님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다행히도 간호사 분께선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듯 분비물을 치워주셨고 다시 한 마음 한 뜻으로 푸시를 진행하기도 한 시간? 두 시간?이 다시 흘렀어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자연분만이고 뭐고 빨리 뱃 속의 아기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지기 시작했어요. 더 이상 푸시만으로는 아기가 나올 기미가 안 보여서 의사 선생님이 오시길 애타게 기다렸지만 너무 안타깝게도 당시가 미국 휴일 하루 전날이라 당직하는 의사 선생님이 많이 안 계셔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과 하는 푸시는 좀 더 다를까 했지만 크게 다를 바는 없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 선생님보다 좀 더 엄하게(?) 푸시를 시도했고, 신랑도 옆에서 좀만 더 힘을 내라며 힘을 북돋아 줬지만 정말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수술하고 싶을 정도로 힘도 안 들어가고 아기는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았어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배큠을 시도해 보자고 하셨고 배큠으로 아기를 꺼내는 거에 실패하면 수술을 바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때 10여 명의 간호사들이 우르르 분만실에 들어왔었던 거 같아요. 다른 걸 따질 경황이 없었기에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진짜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푸시를 했어요. 배큠이라 함은 진공 청소기 같은 기구를 질에 대고 말 그대로 아이를 빨아들이듯이 뱃 속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였어요. 한 번, 두 번, 세번! 신랑이 아기 머리가 보이는 거 같다며 조금 더 힘을 내라며 쉴 새 없이 저를 다독였어요.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힘을 줘 보라고 하셔서 정말 이번에 아기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젖먹던 힘까지 다 끌어올려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푸시를 했고 드디어!!! 아기가 뱃 속에서 나왔어요. 어떤 사람은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 느낌이 오르가즘보다도 더 황홀하다고 하던데 저는 밭에 심긴 무가 뽑히듯이 피부 속의 피지가 살 속에서 뽑혀 나오듯이 쑤~욱 하고 뽑혀 나오는 기분을 느꼈어요. 진통제를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뱃 속에서 나오던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고 기분이 너무 오묘하고 짜릿해서 아직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렇게 우리 아기는 장장 12시간여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엄마가 된 순간이었죠.


아기가 막 무 뽑히듯 뽑아져 나왔을 때 절대 안 울고 침착할 것만 같았던 신랑도 울고 저도 울었어요. 신랑이 그 때 제 손 꼭 잡고 진실하게 했던 너무 고맙고, 너무 고생했다며 자기가 정말 잘할게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전 그 와중에 애기 사진 잘 찍으라고 신신당부하는 블로거 정신을 발휘했구요. 임신, 출산 그 모든 과정이 힘겹고 어려웠지만 출산 이후 처치하는 과정도 어찌나 고통스럽던지요. 배큠으로 아기를 빨아들여서 꺼내다 보니 살이 다 찢어져서 꼬매야 했어요. 이 때쯤 되니 진통약도 다 소진된 건지 한 땀 한 땀 꼬메는 느낌이 전부 느껴지면서 아픔이 밀려왔어요. 이 꼬메는 시간은 또 어찌나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던지... 그리고 이렇게 처치를 하는 동안 아기는 옆에서 간호사 쌤들에 의해 간단히 씻겨지고 닦여져서 제 가슴 위에 얹는 캥거루 시간을 가졌어요.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아기가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왔는지 너무 신기할 따름이었어요. 아기를 안았다는 기쁨도 잠시 만신창이가 된 몸을 힘겹게 일으켜 간호사 선생님 말을 따라 화장실에 들어가 선생님이 해 주시는 대로 기저귀 같은 속옷을 입고 분만실에서 병실로 이동을 했어요. 피도 계속 날 거고 쓰라려서 약도 발라주고 얼음 찜질도 계속 해 줘야 빨리 나을 거라고 하셨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말을 이 때처럼 실감한 날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저에게도 이렇게 출산 무용담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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