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일요일, 마포구청역 부근에 읽기의 집에서 [나, 프레즌스]라는 모임이 있었다. 코칭 모임도 아니고, 독서 모임도 아닌 절묘한 모임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힘이 있는 모임이다.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에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는 10명 남짓한 인원들이 모여서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온전함'이었다. 그리고 한 해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프 모임의 그라운드룰에 이미 '온전함'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은 '나로 존재함', '함께함', '있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어떠한 아픔과 슬픔이 우리 삶을 관통하더라도, 고통과 시련이 일상 속에서 펼쳐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온전함'이다. 내게 있어서 온전함은 편안함과 따뜻함이다. 우리 삶에서 펼쳐지는 고통을 사랑할 수는 없더라도 고통받고 있는 나 자신은 돌봐주는 것, 사랑해 주는 것이 온전함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을 때조차 껴안아주는 것이 온전함이다.
3년 전, 광복절날 편의점으로 야식을 사러 간 나는 발등 골절을 당했다. 철심을 박고 한 달 동안은 아무 꼼짝하지 못했다. 잡혀있던 오프라인 강의와 코칭은 다 취소되었다. 하루에 만보 이상 걷던 활동적인 나였기에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 절망적이었다. 혹시나 다시는 걷게 되지는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일어났다. 그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소중한 이들은 나를 사랑해 주고 돌봐주었다. 멀리서 병원까지 데려다준 작은 누나, 매형, 조카들, 작은누나네 고양이 구르미, 그리고 그 당시의 여자친구는 나를 돌봐주었다. 많은 기프티콘을 소중한 이들에게 받았고, 안부전화와 카톡 등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사랑으로 대해준 덕분에 나는 다시 서서히 일어설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다리가 부러졌어도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할 수는 있었다. 그때 마침 파트너 회사에서 온라인 코칭 프로그램 진행이 들어왔고, 부러진 다리를 의자에 올리며 일을 했다. '코칭'이라는 일을 참 좋아하는구나 그때 다시금 알았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강연콘테스트라는 강연 대회를 참여했다. 본선 대회장으로 느리게 가는 스스로를 보며 '강연'이라는 일을 참 좋아하는구나 또 느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을 읽었다. 한정적이지만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아직 있었다.
고통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쁘게 지내다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준다. 가수 조용필이 부른 노래이자 홍이삭이 커버한 <바람의 노래>에서는 이런 가사가 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아픔과 슬픔, 시련과 절망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이다. '온전함'으로 존재할 것이다. 스스로 사랑할 수 없을 땐 소중한 이들에게 의지하며 도움을 받으며 사랑할 것이다. Love win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