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민족

조영필 &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기원전 13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 그리스(미케네 문명)와 소아시아(히타이트) 그리고 레반트 지역의 후기 청동기 문명을 몰락시키고 400년간의 암흑 시대를 연 침략자들로 아직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 민족Sea People이 있다.


이집트 신전의 비문을 바탕으로 할 때 바다 민족은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계 제 민족으로 보인다. 그러나 히타이트의 멸망도 추가 고려한다면 흑해 북방의 제 민족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 아쉬켈론(Ashkelon) 등 블레셋 유적지에서 발견된 고인류 DNA(aDNA) 분석에서는 레반트 지역에 기원전 12세기를 기점으로 갑자기 남유럽(그리스, 크레타, 사르데냐 등) 계통의 유전적 신호가 급증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럽의 남쪽 해안가 민족들이 왜 바다 민족으로 결합하여 그러한 대규모 침공 및 이주를 감행하게 된 것일까? 또 그 양상이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나 바이킹의 침략 활동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러한 대규모 민족 이동이 일어나려면, 아마도 그 시기 대규모 자연재해가 일어나 그 지역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원전 12세기에서 9세기까지 레반트의 암흑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 이는 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낳은 칠흑의 전사(前史)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한 시기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3.2kyr 이벤트와 청동기 제국의 황혼]

제1막. 시스템의 과부하와 전조(BC 1270년대 ~ 1250년대)

- 기후 상황: 태양 흑점 활동이 줄어들며 북반구 기온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증발량이 감소하며 중앙아시아와 중부 유럽에 장기 가뭄의 징조가 나타난다.

- 사건: 카데시 전투(BC 1274)로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국력을 소진한다. 이 과정에서 전투력이 검증된 샤르다나(Sherden)바다 민족 용병들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레반트와 이집트 요충지에 군사 정착촌을 형성하며 '내부의 관찰자'로 잔류한다.

제2막. 트로이 전쟁의 시작(BC 1230년대 ~ 1210년대)

- 기후 상황: 헤클라 3호(Hekla 3) 화산 폭발 징후와 함께 지중해 수온이 하강하며 식생 파괴가 가속화된다. 지중해 전역에 20년 이상의 초장기 가뭄이 덮친다. 그리스의 농업 기반이 붕괴하여 미케네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한다.

- 사건: 생존 자원을 확보하려는 미케네 연합군이 히타이트의 서부 방벽이자 무역 거점인 트로이(윌루사)를 공격한다.

- 영향: 히타이트는 가뭄과 내부 분열로 속국 트로이를 방어할 여력이 없다. 트로이는 단순한 하나의 도시국가가 아니라 히타이트 제국을 북방 난민으로부터 보호하던 '전략적 빗장'이었다.

제3막. 연쇄 붕괴와 제국의 소멸(BC 1200년대 ~ 1180년대)

-기후 상황(3.2kyr 이벤트의 본격화): 아나톨리아 고원의 강수량이 평년 대비 30% 이상 급감하며 히타이트의 농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한다.

- 사건: 트로이 전쟁(BC 1200년경)과 함께 흑해 근처의 바다 민족들이 남하한다. 이때 흑해 서안의 브뤼게스(Bryges)족은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으로 밀려온다. 또 바다 민족에 자극받은 해안가의 가스카족은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쏟아져 들어와 브뤼게스족과 함께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를 침공한다.

- 영향: 가뭄으로 굶주리고 연쇄 지진(Earthquake Storms)으로 성벽이 무너진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가 불타며 제국은 역사에서 삭제된다. 미케네는 트로이에서 승리했지만, 전리품 대신 파산한 창고를 마주한다. 트로이 배후의 히타이트가 멸망하자 미케네의 핵심 해상 무역로도 단절된다. 원자재(주석, 구리)가 끊긴 미케네 궁전 경제 또한 멈춰버린다.

제4막. 북방의 압력과 시스템의 최종 해체(BC 1170년대 ~ 1150년대)

- 기후 상황(3.2kyr 정점): 기온 하락이 극에 달하며 알프스 이북의 농경지가 동토로 변한다. 언필드Urnfield 문화권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난다.

- 사건(압력의 전이): 다뉴브강과 중부 유럽에 거주하던 언필드인(원시 켈트/이탈리아족)들이 생존을 위해 무장 이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고도의 금속 기술로 제작된 나우에 II형 장검과 청동 갑옷으로 무장한 채 남쪽 발칸반도로 쏟아져 내려온다.

- 도리아인의 남하(연쇄 반응): 언필드인의 압박으로 철기 기술을 보유한 발칸 북부도리아인도 남하하며 미케네의 성채를 타격한다. 전쟁으로 지친 미케네의 성채는 북방의 강력한 장검 보병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 미케네인의 바다민족화: 성채를 잃고 굶주림에 직면한 미케네인들 자체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동시에 이탈리아, 샤르데나 등 남유럽 족이 이 거대한 약탈 네트워크에 합류한다.

제5막. 최후의 저지선과 새로운 질서(BC 1150년대 이후)

- 사건: 바다 민족 연합군이 키프로스를 초토화하고 레반트를 거쳐 이집트를 침공한다. 이집트(람세스 3세)는 막대한 희생 끝에 이들을 막아내며 유일하게 생존하지만, 강력한 제국들의 시대는 끝이 난다.

- 레반트: 바다 민족의 거센 물결에도 불구하고 요새화된 항구의 거점을 잘 보존한 페니키아인들이 무너진 제국들의 공백을 틈타 해상무역권을 장악하고 알파벳을 전파한다.

- 철기 시대의 도래: 청동 공급망(주석 무역로)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주변부에 머물던 철기 기술의 급격한 확산을 불러온다.

- 그리스: 400년의 암흑기 동안 혈통과 기술이 섞여, 거대 제국 대신 작고 강한 자치 공동체인 폴리스(Polis)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스의 암흑시대(Greek Dark Ages) 추적]

제1막. 문명의 급격한 퇴보와 단절 (BC 11세기 ~ 10세기 초)

미케네 성채들이 파괴된 직후, 그리스 사회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 선형문자 B의 소멸: 궁전 중심의 복잡한 관료 체계가 무너지면서, 기록 수단이었던 선형문자 B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스는 약 400년 동안 글자가 없는 무문(無文) 시대를 겪게 된다.

- 인구 감소와 이주: 대규모 가뭄과 전쟁을 피해 생존자들은 산간 오지나 에게해 너머 소아시아 해안(이오니아 이주)으로 흩어졌다. 찬란했던 도시는 사라지고 작은 마을 단위의 원시적 생활로 돌아갔다.

- 기술의 실전(失傳): 거대 석조 건축 기술과 정교한 금속 공예 기술이 자취를 감추었다.


제2막. 도리아인의 정착과 철기 시대의 개막

북방에서 내려온 도리아인들은 기존 미케네 세력을 밀어내거나 섞이며 그리스의 인구 지도를 다시 그렸다.

- 청동에서 철로: 청동의 원료인 주석의 국제 공급망이 붕괴하자, 그리스인들은 주변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철광석에 주목했다. 이 시기부터 철제 무기와 농기구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생산력의 기반이 바뀌었다.

- 기하학적 양식의 등장: 도자기 예술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미케네의 화려한 자연주의적 문양 대신, 단순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Geometric style)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가 점차 규격화되고 질서를 찾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 장례 문화의 변화: 미케네 문명은 거대한 돌무덤(Tholos)에 시신을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도리아인이 남하하며, 시신을 태워 항아리에 담는 화장(Cremation) 풍습을 가져온다. 이는 도리아인들이 언필드 문화(Urnfield = 유골함 들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훗날 고전기 그리스의 보편적인 장례 양식 중 하나가 되었다.


제3막. 새로운 지배 계급: '바실레우스(Basileus)'의 등장

과거 궁전의 절대 군주였던 '와낙스(Wanax)'의 시대가 가고, 지역 공동체의 우두머리인 바실레우스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 오이코스(Oikos) 중심 사회: '집안' 또는 '가문'을 뜻하는 오이코스가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바실레우스는 강력한 전제 군주가 아니라, 전쟁 시 앞장서 싸우고 평상시에는 가문의 원로들과 협의하는 '귀족 중의 제1인자'에 가까웠다.

- 호메로스적 가치관: 훗날 기록된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이 암흑시대 말기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개인의 명예(Time)와 용기(Arete)를 중시하는 전사 사회의 기틀이 이때 마련되었다.

제4막. 재도약의 신호: BC 9세기의 변화

기원전 9세기에 접어들며 그리스는 마침내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 인구의 재증가와 무역 재개: 농업 생산력이 회복되면서 인구가 다시 늘어났고, 페니키아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지중해 무역망에 다시 편입되었다.

- 알파벳의 도입: 기원전 9세기 말, 페니키아 문자를 빌려와 그리스어에 맞게 변형한 그리스 알파벳이 탄생했다. 이는 암흑시대를 끝내는 결정적인 도구가 되었다.

- 폴리스(Polis)의 태동: 흩어져 살던 마을들이 성소(Temple)를 중심으로 결합하는 시노이키스모스(Synoikismos)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고전 그리스의 핵심인 '도시국가' 체제로 이행하는 서막이었다.



[당시 전 지구적 기후 재난과 그 증거]

실제로 이 시기는 단순히 동지중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반구 전체의 기후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던 시기로 보인다. 이 시기 지중해의 수온은 급격히 낮아지면서 증발량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아나톨리아 고원과 레반트 지역에 비를 뿌리던 겨울 폭풍이 약해졌다. 결국 히타이트의 주식인 밀과 보리 수확량이 급감하며 제국의 배급 시스템이 붕괴되었다


1. 기후 재난의 증거 (Paleoclimatology)

- 나이테 분석 (Dendrochronology): 아일랜드와 독일의 고대 나무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기원전 1200년경을 전후해 성장이 극도로 위축된 흔적이 발견된다. 이는 북반구 전체의 기온 하락이나 심각한 가뭄을 뜻한다.

- 꽃가루 분석 (Palynology): 최근 시리아와 키프로스의 호수 침전물에서 채취한 꽃가루를 분석하면, 이 시기에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급감하고 가뭄에 강한 관목들이 늘어난 것이 확인된다. 약 300년 동안 간헐적으로 수십 년씩 지속된 '장기 가뭄'(The 300-year Drought)의 직접적 증거이다.

- 동굴 석순 분석: 이스라엘과 그리스 동굴의 석순(Stalagmite) 산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이 시기 강수량이 평소의 20~30%까지 떨어졌음을 입증했다.

2. 기후 이상 원인 가설

- 태양의 흑점과 복사 에너지: 태양 흑점 활동의 극소기(Minimum)가 기후 변화의 주범이라는 가설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흑점 수가 줄어드는 시기에는 태양이 방출하는 복사 에너지가 미세하게 감소한다. 이는 지구 전체의 기온을 낮추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 증거로 빙하 코어와 나무 나이테의 탄소-14 및 베릴륨-10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시기에 태양 활동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패턴이 발견된다. 그 결과 기온이 내려가면 바다에서의 증발량이 줄어들고, 이는 곧 대륙으로 이동하는 수증기의 양을 감소시켜 전 지구적 가뭄으로 이어진다.

- 소빙기(Little Ice Age)의 전조: '3.2kyr BP(Before Present) 이벤트'라고 부른다. 이는 정식 빙하기는 아니지만, 매우 강력하고 급작스러운 '한랭 건조화 시기'를 뜻한다. 북대서양의 해류 순환(대서양 열염순환)이 약해지면서 적도의 따뜻한 공기가 북쪽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북반구 전체가 냉각되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되면서 지중해 지역으로 비를 몰고 오던 편서풍의 경로가 바뀌어버렸다. 그 결과 비가 내리지 않는 '영구적인 가뭄' 상태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 화산 분출로 인한 '화산 겨울'(Volcanic Winter): 이 시기 전후로 아이슬란드의 헥라 3(Hekla 3) 화산이나 다른 대규모 화산들이 분출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성층권까지 치솟은 화산재와 이산화황 입자들이 태양 빛을 반사하여 지구 온도를 강제로 떨어뜨렸을 가능성이다. 이는 흑점 활동 약화와 결합하여 기온 하락의 시너지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진 폭풍(Earthquake Storms): 기원전 1225년에서 1175년 사이 그리스 본토에 강력한 지진들이 연달아 발생했다는 가설이 있다. 미케네, 티린스 등 주요 성채 유적에서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벽과 그 아래 매몰된 유골들이 발견된다.


3. 다른 지역의 기록

- 중국: 상(商)나라의 몰락과 주(周)나라의 교체 시기와 일치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큰 가뭄과 서리가 내려 농사를 망쳤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 인도: 베다 시대 초기, 인더스 문명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고 인구 이동이 일어난 시점과 맞물린다.

- 중앙아시아: 초원이 사막화되면서 유목민들이 살 길을 찾아 남쪽(유럽과 중동 방향)으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다 민족 이동의 '제1동력'이 되었다.


4. 결과

- 기후 변화와 가뭄: 지중해 전역에 걸친 장기적인 가뭄과 식량 부족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던 에게해와 아나톨리아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남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 도미노 효과: 히타이트와 미케네 문명이 내부 결함 및 기후 위기로 먼저 약해졌고, 바다 민족의 유입은 이미 무너지고 있던 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격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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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지돕. 호기심 탐구자. 탐구 대상 : 시, 몸과 마음, 장기와 바둑의 기원, 돈, 한국어와 외국어, 문통(問洞), 기업가정신, 신뢰, 민주, 법치, 중독, 세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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