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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빛 Feb 02. 2018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誰も知らない)

초록색과 붉은색, 현실과 꿈의 대비



어쩌다가 일본영화에 편견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저의 영화 편식에 꿀밤을 한방 먹이는 작품이었어요.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정보를 미리 접해서 그럴까요. 12살 아키라가 10살 교코, 7살 시게루, 5살 유키 세 명의 동생들과 함께 살아내는(?) 그 눈빛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몇몇 색상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록색 계열과 붉은색 계열이 서로 번갈아가며 등장했는데요. 



이미지출처-네이버, 수정

시계처럼 빙 두른 색상황에서 두 색이 반대에 위치에 있지요? 이렇게 보색을 이루는 색들은 극과 극의 성질 때문에 강하게 시선을 끄는 효과가 있습니다. 원래 반대 성질은 서로 밀어내면서도 더 끌리기 마련이니까요. 

초록색은 중성색입니다. 푸른색 계열의 한색과 붉은색 계열의 난색의 사이에 위치하는 색이죠. 한색처럼 짙은 슬픔, 차가움, 또는 신뢰감 등의 느낌과 난색의 열정, 따뜻함, 위험, 귄위 등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중성색 초록은 안전함, 편안함, 자연과 같은 느낌을 주는 동시에 반대로 무덤덤하고 확실치 않고 애매한 느낌을 표현합니다. 

영화의 아이들의 세계는 초록색 계열과 붉은색 계열 쪽에 위치합니다. 




+현실의 초록색


집을 나가버린 엄마 대신에 동생들을 돌보는 아키라가 집과 편의점을 오갈 때 거리에서 청록빛이 자주 드러납니다. 짙은 눈매와 꼭 다문 입술, 젖살이 빠진 갸름한 얼굴선이 다부진 아이에게 현실은 무거운 곳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둘러매고 아무리 문을 찾아 헤메어도 보이지 않는, 그런 아키라에게 현실을 상징하는 색이지요.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애매하고 미묘한 상황의 아이들, 밝고 순수하지만 슬픔이 가득한 아이들, 난색과 한색의 중간에서 어찌할바 몰라 서성이는 아키라의 모습을 중성색인 초록색으로 표현합니다.




+아키라의 초록색


아키라는 엄마가 집을 나간 뒤 돈이 떨어지자 엄마의 옛 남자친구들이자 동생들의 아빠들에게 돈을 얻으러 가죠. 여동생 유키의 아빠가 일하는 택시 회사의 택시도 초록이고, 남동생 시게루의 아빠가 입은 잠바도 짙은 초록색입니다. 그들이 건네주는 푼돈, 지폐도 옅은 초록빛이 감돌아요.  


아키라가 현금지급기를 이용하고, 공과금을 내며, 만화책을 보고, 장을 보는 편의점의 색도 초록색입니다. 초록색 간판의 작은 편의점에서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힘 없는 점원들은 아키라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죠. 그 이상의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다섯명의 아이들은 꽃씨를 받아와서 일회용 라면 그릇에 심어요. 식수도 부족한 와중에도 물을 주며 베란다에서 키우죠. 점점 피폐해져 가는 아이들과 달리 초록색 작은 식물들은 쑥쑥 자라납니다.  




+아키라의 붉은색 


아키라의 장면에서 붉은색이 두번 등장합니다. 엄마가 짐을 챙겨 떠날 때 커다란 붉은색 가방을 들고 가요. 크리스카스 때 올거라고, 돈도 부치겠다던 엄마는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엄마의 붉은 쇼핑백이 전철 개표구를 지나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아키라의 뒷모습에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가장이 된 아키라는 용돈으로 글로브를 살거라며 옅은 미소를 짓는 천상 아이입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울릴 친구도 없는 아키라가 공원 놀이터에서 붉은색 공을 줍습니다. 혼자서 공을 던지고 나뭇가지로 치며 즐거워 하는 아키라의 표정엔 미소가 흘러요. 





+교코의 붉은색


붉은색은 교코와 유미 두 자매의 이야기에서 주로 등장합니다. 자매가 그리워하는 엄마, 엄마에게 받은 상처, 그리고 엄마를 너머 꿈꾸는 이상향. 붉은색은 꿈이자 그리움이자 상처의 피입니다. 


밤 늦게 들어오는 엄마는 붉은색 긴 숄을 하고 있습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날 쿄코에게 발라주는 매니큐어의 색도 붉은색입니다. 한 달 만에 집에 들어온 엄마를 무표정으로 쳐다보던 쿄코가 붉은 매니큐어를 열어 냄새를 맡습니다. 쿄코에게 엄마는 붉은색이며, 붉은 냄새입니다.  


그 매니큐어가 바닥에 떨어지고, 손에는 상처간 나 것처럼 매니큐어가 묻었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는 쿄코의 모습은 붉은색이 사라져도 어찌 할 수가 없는 무기력한 모습의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그리고는 크리스마스에 온다던 엄마가 오지 않자 바닥에 남은 붉은 매니큐어 자국을 어루만지죠. 


이미 쿄코에겐 너무 작은 미니 피아노는 붉은색입니다. 엄마가 발라준 붉은 매니큐어가 벌겨질 동안 손가락 몇개로 누르고 있죠. 피아노를 치고 싶은 쿄코에게는 빨래를 도맡아 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베란다의 세탁기 앞에서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두 손을 세탁기 위에 올리고 선 모습은 마치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집에서 빨래하는 소녀입니다. 





+유키의 붉은색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5살 유키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붉은색 크레파스를 골라 엄마를 그립니다.  
엄마를 찾아가겠다며 떼쓰다가 아키라와 함께 나가는 장면에서 유키가 고르는 신발도 붉은 슬리퍼예요. 이미 작아진 슬리퍼를 신고 걸을 때마다 나는 뽁뽁뽁 소리는 유키의 존재를 이웃에 들키면 안되는 상황에서 ‘나 여기 있어요’ 속삭이는 아기의 울음소리 처럼 들립니다.  

유키가 좋아하는 과자 ‘아폴로 쵸코’의 포장지도 붉은색이네요. ‘마지막 하나!” ‘아껴 먹어야지’ 유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이의 애처로운 마음처럼 들립니다.  

유키의 옷도 신발도, 영화 초반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트렁크도.. 모두 핑크빛이 돌지요. 붉은색보다 조금 더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줍니다. 엄마를 찾던 어린 아이는 결국 엄마의 품, 자궁과 같은 붉은색 사각 공간에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사키의 보라색과 파란색


네 명의 아이들에게 또 한명의 소외된 소녀 사키가 등장합니다. 사키는 초록색과 붉은색의 세계에 살던 아이들의 반대편 파란색과 보라색의 세계에서 온 아이입니다.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사키는 슬픔과 차가움의 파란색을 가진 소녀였지요. 말수가 없고 홀로 앉은 모습은 신비로운 보라색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키가 처음 아이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방바닥의 몽땅 크레파스를 밟는 장면이 있는데요, 크레파스의 색이 보라색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큰 의미는 없어보이겠지만 유키가 사키의 얼굴을 그려줄 때 고르는 색이 바로 보라색이죠. 유키에게 사키는 엄마의 붉은색 대신에 찾아온, 붉은색 옆의 보라색이었습니다. 슬프고도 따스한 사키의 무릎에서 새끈새끈 잠자는 유키. 엄마 대신 찾아온 천사였죠.


사키는 아키라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뽑아 아키라의 볼에 대어주는 사키. 음료수의 색은 샛파란색입니다. 초록색 인근에 위치하는 파란색은 무기력하던 아키라에게 시원한 파란색 한모금을 주었습니다. 결국 음료수는 집으로 와서 동생들과 나눠 먹었으니 사키는 네 명 아이들이 갈구하던 관심을 주는 존재가 되었네요.  




+다시 초록색 


아키라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초록색 초록색 편의점에서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얻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아이들.. 교코는 여전히 빨래 바구니를 들고, 시게루는 여전히 장난스럽게 공중전화의 남은 동전을 찾아요, 사키는 여전히 슬프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아이들 옆에 섰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길을 걸어갑니다. 

유난히 손을 자주 비춰주는 영화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따스한 손길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흙에 더럽혀진 아키라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는 사키의 손,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배경음악의 가사가 마음을 울립니다.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세상의 모서리에서 더 깊은 모서리로 몰려가는 아이들, 무덤덤한 표정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냅니다. 
오래된 계단 모서리에 핀 초록색 생명 이끼처럼.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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