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함께 떠나는 <사막의 찬가>
혹독한 땅, 선의도 온정도 없는 땅, 열정과 열광의 땅, 예언자들이 사랑했던 땅.
아! 고통스러운 사막, 영광의 사막이여.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였다.
_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지상의 양식』 민음사, 179p 중
자이살메르 ㅣ 인도의 중서부, 라자스탄 주의 '마지막 요새'로 불리는 자이살메르(Jaisalmer)는 사막지대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이다. 수도 델리에서 20여 시간의 슬리핑 기차를 꼬박 타고서 도착할 수 있는, 여행자들에겐 낙타 사파리로 잘 알려진 곳이다. 사막의 도시는 풋내 나는 여행자가 기대했을 거대한 모래 언덕을 보여주는 대신, 쉴 새 없이 잔기침을 유발하는 모래바람을 날리며 그곳에 가까워졌음을 짐작케 했다. 처음 마주한 사막은 황량한 벌판에 가까웠다. 드문드문 초록 식물이 보였지만 이내 모래에 잠겨 색은 자취를 감췄고, 그 마른 풍경마저 곧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두바이ㅣ 아랍에미리트 연방 7개국 중 한 곳으로 사막 위에 세워진 '꿈의 도시'라 불리는 두바이(Dubai). 막강한 오일머니로 바다 한가운데 모래를 쌓아 인공섬을 만들기도,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임에도 세계 최대의 실내스키장이 있는 사막 위에 오롯이 솟은 신기루 같은 도시이다. 15시간의 비행기를 타고서 도착한 도시에서 사막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화려한 빌딩이 가득한 매끈한 도시에 간간이 불어오는 마른 바람에 겨우 모래 냄새를 맡을지도. 그러나 이마저도 바다 짠 내에 가려 이곳이 어디에서부터 사막이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막의 밤에 대하여, 밤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느린 항해와도 같다. 바다의 물결도 사막만큼 푸르지는 못하다.
사막은 하늘보다도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별 하나하나가 저마다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던 그러한 밤을 나는 알고 있다.
_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지상의 양식』 민음사, 183p 중
자이살메르 ㅣ 준평원지대인 이곳에서 모래 언덕을 만나기 위해서는 낙타에 의지한 채, 꽤 먼 거리를 이동해 찾아가야만 한다. 여정은 오로지 낙타에 의지대로 움직여 풀을 발견한 낙타가 식사를 하거나, 지친 낙타가 잠시 숨을 고를 때 사람들 또한 함께 휴식을 취한다. 방향 모를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모래 언덕에 다 다르고. 여행자는 그제야 마음을 부리고 짐을 놓고, 모래가 주는 포근한 감촉에 의지한다. 모래 바람을 막아줄 언덕 인근, 평평한 땅을 찾아 누넉누덕 기운 큰 담요를 깔고 그곳에 각자의 침낭을 펼친다. 뜨거웠던 사막은 금세 식어 침낭에서 고개조차 쉬이 뺄 수 없는 긴 밤이 찾아온다.
두바이ㅣ 빌딩으로 가득 찬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거짓말처럼 길 양 옆으로 사막의 모래 언덕이 펼쳐진다. 사륜 구동으로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타이어의 바람을 모두 빼야 한다. 걷는 것만으로도 발이 빠지기 일쑤인 모래 언덕에서 흐르듯이 모래의 물결을 타기 위해서 타이어의 접지 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거대한 모래 언덕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수직 하강을 몇 차례. 사막은 먼저 몸으로 체험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짜릿한 사막의 행로는 홀연히 나타난 캠프에서 멈춰 선다. 베두인의 만찬에 초대받은 여행자는 어느 새 흘러나오는 공연과 음식에 홀리고, 짙은 사막의 밤은 깊어간다.
자이살메르 ㅣ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혹한 사막의 추위에 고개를 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생각지 못한 추위에 온 몸의 감각이 열리는 듯 예민해진다. 그때 킁킁 소리 내며, 다가오는 희미한 소리. 잘못 들었겠지 하는 순간 무엇인가 야무진 움직임으로 침낭 옆 꾸리를 파고든다. 외마디 비명이 나오려는 순간, 이번엔 다리 아래쪽에 묵직한 것이 느껴진다. 몇 차례 뒤척이던 움직임이 이내 잠잠하다. 온갖 상상이 든다. 사막에 사는 맹수인가.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해야 할 것 인가. 아니다. 괜히 그것의 신경을 건드려. 내 목이라도 '콱'무는 건 아닌지 온갖 공포가 밀려든다. 한참을 그랬을까, 꿈쩍도 못하고 송장 마냥 굳어 웅크려 있던 시간. 그때 '드르렁, 휘이'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설마 이 소리는 코 고는 소리인가. 누가 내가 겪고 있는 이 절박한 상황도 모른 채, 저렇게 깊은 잠에 빠졌단 말인가. 공포가 원망이 되려는 순간, 옆구리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 단잠에 빠진 것은 이 맹수(*내 상상 속에선 이미 맹수)들이었구나. 인간도 동물에게도 이 밤이 차갑기는 마찬가지구나. 나의 작은 침낭에, 미약하게나마 체온을 나누고자 이들이 나를 찾은 것이구나. 아마도 여행자의 캠핑이 잦은 이곳이기에 그들도 우리가 익숙해졌던 것이겠지. 생각이 꼬리를 물며, 곧두셨던 마음이 이내 녹는다. 어느 새 나도 그들의 작은 체온을 쫓아 깊은 잠에 들었다.
두바이ㅣ 베두인의 밤은 화려하다. 사막 한 가운데, 신기루처럼 자리한 '인공의' 캠프에서 아리비안나이트는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밤은 지칠지 모르고 계속된다. 뽀얀 물담배의 연기와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의 이국적인 춤이 이어지고, 어느 유목인의 밥상에서 가져왔을 음식을 내어주기도 한다. 천일 동안 계속되었다는 '그' 밤이 무색하게, 화려했던 밤은 조금씩 사그라지고 캠프파이어를 했던 남은 불씨만이 지난밤의 영광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씨마저 사그라들던 그 시간, 짙은 사막의 밤이 덮치던 순간. 사막의 밤은 그제야 내게 진정한 '아라비안나이트'를 허락해주었다. 셀 수 없을 만큼 총총히 박힌, 당장 손에 잡힐 것 같은 별들은 내가 보아왔던 이전의 별자리와는 생경한 모습이다. 빛 한점 없는 깊은 사막에서 어느 유목인의 길잡이가 되어줬을 별이 내게도 그 셀 수 없는 밤의 이야기를 고존곤히 전해준다. 고요했던 영광의 순간은 여명이 터 오면, 천천히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나의 아라비안나이트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혼자만의 밤, 나는 내 침실 텅 빈 천장으로 그때의 별들을 모두 소환한다. 사막의 밤, 그 수많은 별 아래 잠들어 본 사람은 이제 어느 곳에서도 그때의 순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사막의 별은 꺼지지 않는다.
<별들의 찬가>
"나는 저 모든 별들의 이름을 알아요. 저마다의 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요. 별들은 각기 다른 덕목들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눈에는 고요해 보이는 저들의 운행은 빠르고 그래서 별들이 타는 듯이 뜨거워지는 것이랍니다. 저들의 불안하고 뜨거운 열 때문에 별들은 급격하게 움직이고 그 결과 찬란하게 빛나지요. 어떤 내밀한 의지가 저들을 충동하고 인도하고 있어요. 저들은 미묘한 열광에 붙타올라 마침내 타버려요. 그래서 별들이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별들은 모두가 서로서로 그들의 미덕이요, '힘'인 어떤 유대에 의하여 이어져 있지요. 그래서 하나의 별은 다른 별에 의존하고 다른 별은 또 모든 별에 의존하지요. 각자의 길이 정해져 있어서 각자는 제 길을 찾지요. 각각의 길은 각각의 다른 별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저마다의 별은 길을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다른 별을 혼란에 빠뜨릴 테니까요. 그리고 각각의 별은 그가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기 길을 택하지요. 그 별은 반드시 택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숙명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길이 각각의 별에게는 그가 선호하는 길이지요. 저마다의 길은 완전한 의지에 따른 것이니까요. 어떤 눈부신 사랑이 별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이 법칙을 확정하게 되니 우리는 그 법칙에 좌우됩니다. 우리는 도망갈 길이 없어요."
_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지상의 양식』 민음사, <찬가_결론을 대신하여> 199-200p 중
사막의 밤을 담은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다.
사진을 남기는 대신 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여 내 눈에, 내 기억 속에. 어느 사진보다도 선명하게 담고자 했다.
오롯이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있었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내 여정 속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