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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정 Jan 12. 2019

왜 나는 굴업도를 사랑하는가

_ 굴업도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굴업도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굴업도로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가볍다. 하루에도 수차례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고, 매번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일상에서 과연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은 얼마나 될까. 하물며 누적된 일상의 피로함을 잠시 접어두고 모처럼 떠나는 휴가에도 우리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야만 한다. 그 순간에조차 온전한 쉼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서해의 작은 섬, 굴업도에서는 보통의 휴가를 떠나기 전처럼 일정을 먼저 계획하는 일도, 그 사이에 흔한 맛집을 찾을 필요도 없다. 게으른 걸음으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섬은 하루는 마을 반대편인 동쪽에 다녀오고, 해질 무렵엔 서쪽 해변가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그만이다. 유난히 고운 모래를 가진 해변엔 나와 일행의 발자국만 자박자박 따라올 뿐이다.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여느 일상과 달리 이미 놓인 길을 걷는 여행은 때로 온전한 쉼이 된다. 굴업도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하지만 어쩐지 이 작은 섬에서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섬은 그저 무심, 하게 쉬어가라고.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사랑은 서로 발견하는 일

굴업도에 곧 도착한다는 반가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처음 만나는 섬의 모습은 어쩐지 아무도 살지 않는 섬처럼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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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_ 오로지 민박집


굴업도에는 일상에서 우리가 누린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없다. 작은 섬에는 차도 필요 없고, 바다마을에 흔한 횟집 식당도, 어디에나 있는 작은 편의점마저 없다. 바다 전망이 보이는 근사한 시설의 숙소를 꿈꿨다면 이 또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섬에는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머물, 민박집에서 소화한다. 시골집 방 한 칸을 빌려 쓰는 민박집에서는 수고스럽게 맛집을 검색할 필요 없는 황송한 밥상을 매 끼니마다 받을 수 있고,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약간의 음료와 주류도 구비하고 있다. 최근엔 수입맥주도 입성했다(단, A 사 맥주 하나뿐이다). 굴업도로 떠나기 전, 해야 할 거의 유일한 선택은 여정 동안 머물 민박집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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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편_ 배편은 홀짝, 을 기억해요! 


굴업도로 떠나기 좋은 날은 언제일까? 강아지풀과 모양이 비슷한 갈대 크기의 수크령이 개머리 초원을 넘실넘실 가득 채우는 시월, 가을이 가장 찾기 좋은 계절이다. 각 계절마다의 호젓함과 그 장점은 있지만, 모든 계절을 관통하는 1가지의 유용한 팁이 있으니. 바로 홀수날 들어가서 짝수일에 나오는 것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배는 덕적도에서 다른 배로 옮겨 탄 후에 굴업도로 들어가게 된다. 덕적도와 굴업도를 잇는 배는 하루 한편, 이 배는 인근 작은 섬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홀수날에는 굴업도까지 1시간 남짓, 다른 섬을 먼저 경유하는 짝수일에는 무려 2시간 반이 소요된다. 섬에서 나오는 배 또한 그 반대로 운행을 하기 때문에, 좀 더 일찍 굴업도에 도착하고, 여유 있게 섬에서 나오고자 한다면. 배편 예약은 출발일 기준 홀짝, 을 기억하는 것이 퍽 도움이 된다.

        

(사진) 굴업도에 흔한 이동수단인 경운기와 트럭. 굴업도만의 스타일로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마중 나온 트럭들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예약한 민박집 트럭에 짐을 싣고 덩달아 나도 실리면 되는데, 모든 민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어떤 차를 타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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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코끼리_ 물때 활용법

(사진) 굴업도는 섬의 형태가 마치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하나였다가 똑, 떨어진 것만 같이 생긴 인근에 작은 섬인 소굴업도(토끼섬)는 물이 빠지면 거짓말처럼 또렷한 길이 이어진다. 


섬에 도착했다면, 민박집에 걸려있는 달력을 살펴보자. 하루 중 물이 가장 높고 낮아지는 물때가 적힌 달력이 있을 것이다. 보기 어렵다면 민박집주인께 여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물 때를 안다는 것은 이 섬에서 만날 수 있는 몇 가지의 기적을 만나는 일과 통한다. 평소엔 바다에 잠겨 있어 닿을 수 없는 섬이 물이 빠지고 나면 길이 드러나 그곳에 입도할 수 있게 된다. 마을과 가까운 큰말해변에 위치한 토끼섬은 과거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놓고 키운 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유난히 거친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동굴과 독특한 지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코끼리바위는 섬 동편에 위치, 높은 언덕으로 돌어가지 않고도 물이 빠진 펄을 걸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장이라도 코를 치켜세워 물을 뿜을 것 같은 코끼리 바위가 있는 작은 해변은 인적이 드물고 파도도 잔잔해 프라이빗한 비치로도 제격이다. 그리고 하나 더, 물이 빠진 모래 해변을 걷다 보면 듬성듬성 발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운이 좋다면 큼직한 모시조개를 발로 낚기도 한다.    

영락없는 코끼리 모습의 바위가 코끼리 몸집만큼 우뚝 서 있는 모습은 섬에서 빠지면 섭섭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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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 끼_ 굴업도의 밥상

(사진) 평범한 시골 밥상으로 보이는 이 음식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가져온 재료가 없다. 늦은 봄, 미끄러운 갯바위에 잠시 올라왔다 금세 뜨거운 태양에 녹아버려 일 년 중 단 며칠만 캘 수 있다는 우뭇가사리는 반나절 내내 한 포대 작업해와 씻고 말리고 종일 쒀서 묵으로 만들어 내며 한 끼 반찬으로 나가는 접시로 끝이다. 고동무침은 어떠한가, 한 대야 가득 삶아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까고 나면 그 또한 손님상에 나가는 한 접시이다. 굴업도의 밥상엔 어느 것 하나 이 바다를, 민박집주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귀하지 않은 재료가 없다. 그 내막을 듣고 나면, 밥상 위 밥 한 톨도 허투루 놓칠 수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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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_ 목기미해변과 모래언덕

(사진) 마을이 있는 서섬과 무인도가 된 동섬을 연결하는 긴 모래사장이 목기미해변이다. 이 해변은 일 년에 몇 차례 아예 물에 숨어 섬을 둘로 나누기도 한단다. 사막 같은 모래 한가운데, 양쪽 바다를 나란히 두고 앉아 듣는 파도소리는 때로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 알 수 없는 그리움마저 고운 모래알처럼 스며든다.

(사진) 20년 전 세운 전봇대는 2~3년 만에 2m가량의 윗부분만 남기고 지금의 모습처럼 모래에 파묻혔다고 한다. 지금도 퇴적은 계속되어 모래 해변은 큰 풍랑으로부터 섬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자연방파제 역할을 해준다.

사막의 한 장면 같은 모래 언덕, 퇴적된 모래는 자연 미끄럼틀이 되어주기도 한다. 소사나무와 모래 언덕의 조합이 이국적이다.


5

pm5_ 별과 노을의 시간, 개머리초원 

섬은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곳 개머리초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해질 무렵, 노란 노을이 내려앉는 언덕을 따라 오르면 가파르기만 했던 능선 너머로 느닷없이 드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막힘없이 펼쳐지는 풍경은 그 경계마저 모호한 바다와 멀리 떠 있는 섬마저 하나로 껴안으며, 물밀 듯이 불어오는 저녁 바람마저 포근하게 감싸준다. 초원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넘실거리는 수크령이 가득한 오솔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수십 년 전 방목한 초원의 사슴들은 야생화되어 소사나무 군락에서 갸우뚱, 가끔 그 수줍은 모습을 보이고, 두 번의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섬의 서쪽 끝인, 절벽과 맞닿은 초원의 끝에 다다른다. 이곳은 별이 쏟아지는 장소로도 유명해 달이 어두운 까만 밤에는 하얗게 쏟아지는 별빛만이 이곳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해질 무렵, 가파른 초원을 오르는 이유. 백패커들의 성지로도 유명하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해의 작은 섬 굴업도를 다시 찾는 이유가 이 시간 속에 응축되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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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시선_ 섬을 담는 소소한 즐거움

(사진) 선착장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포장도로인 길에는 구불구불한 급 커브 구간이 많아, 짧은 거리임에도 여러 개의 볼록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6개의 거울이 띄엄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포인트마다 보는 굴업도의 풍경 또한 서로 달라 색다르다. 산책길, 섬을 담고 있는 6개의 시선을 따라 사진을 같이 남겨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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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구_ 큰말해변마을

모두 7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섬 한가운데 가장 포근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섬의 가구수를 가늠할 수 있는 주민들의 우편함을 마을 초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섬이 주는 고요하고 아늑한 기억은 언제고 굴업도를 다시 찾게 되는 그리움이다.






알고 가면 좋아요! _ 굴업도 예약 tip


1. 배편은 예매 사이트인 가보고 싶은 섬(https://island.haewoon.co.kr)을 검색, 출발일 한 달 전부터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다. 사람이 많이 찾는 가을과 주말엔 매진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배편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인천 연안부두-덕적도는 하루 2편, 덕적도- 굴업도 구간은 하루 1편 운행(*총 2건 각각 예매 필요)으로, 같은 해운사에서 운행하는 배를 예약하는 게 편하다. 기상 악화로 인한 결항 및 지연 시, 연결 편까지 확인하자. *평일 출발에는 여객선 운임의 50% 할인 행사가 진행 중이니 기억해두자.


2. 민박집은 전화를 통해서만 예약이 가능하다. 민박집 수가 워낙 적고, 인기가 많은 집인 경우에는 몇 달간의 주말이 모두 차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굴업도에 입도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이자, 최선의 선택을 위한 민박집 예약은 서두르는 사람만이 그 섬에 갈 수 있다.

☞ 굴업도민박 032-832-7100 ☞ 장할머니민박 032-831-7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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