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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Feb 02. 2023

나는 1.5세 공구상이다.

[#16] 철물점TV X 공구로운생활의 월간 콘텐츠

공구상의 될 운명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추석 연휴가 10일 정도 되었던 어느 연도에 나는 유럽여행을 떠났었다. 벨기에에 유학하는 친구의 집에서 지내면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를 신나게 여행했었다. 정확한 행선지는 모른 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20대 청춘 여행을 제대로 만끽했다. 그리고 귀국을 마친 인천공항에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알았다. 뇌경색. 아버지는 내가 여행이 떠난 3일 뒤에 쓰러지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오셨고 나에게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귀국하고 바로 다음날, “유럽은 어땠어요?” 하는 회사 동료들의 궁금증을 뒤로 나는 사표를 썼다. 당장 거래처에 납품을 들어가야 했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체 부랴부랴 우리집 아파트 지하 2층에 내려와보니 40만 주행거리의 낡은 리베로가 있었다. 1종을 땄지만 일반 승용차 운전조차 미숙했던 나는 그대로 트럭을 끌고 공구상가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가게를 나갔거나 일을 도와드리는 2세 공구상들이 가진 추억 스토리도 없었다. 공구도 군대에서 항공정비를 한 게 전부였고, 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을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리베로 폐차 직전에는 50만을 앞두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대부분 부러워했다.


이야 너 사업 물려받은 거야?
좋겠다 너는 너 사업할 수 있는 거잖아?
너는 어느 정도 기반을 깔고 가는 거네?


반면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대단한 사업 규모도 아닌 1인 기업이었고 겨우 4인 가족이 벌어먹을 수준이었다. 온라인 유통은 당연히 없었고 고정 거래처가 전화하면 납품 들어가는 성장이 없는 일상이 매일이었다. 어느 날은 지방 납품이라고 하루 종일 전국을 돌았던 적도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국을 돌고 허름한 모텔에서 컵라면과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내가 처량하기도 했다.


이보다 더욱 힘들었던 고독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나 혼자 깨우쳐야만 했다. 실수 속에서 배움을 얻어 갔다. 정확한 공구명을 제품의 반품과 고객의 컴플레인에서 배웠고, 제품 모델명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주변의 조언 없이 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책임져야만 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이 창업에 도전했으면 어땠을까?


가업 또는 사업은 물려받는 게 아니었다. 떠안는 것이었다.


반면 좋은 점도 있다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거침없이 실행해 볼 수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 유튜브 콘텐츠, 에세이 출간 등 내가 잘하는 역량과 공구 분야를 결합하여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나는 2세 공구상들을 부럽곤 했는데 만나보니 2세들이 오히려 나에게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든지 바로 실행해볼 수 있어서 그렇단다. 공구 기업은 다소 보수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나는 1.5세 공구상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1세이기엔 아버지의 뒤를 이었고, 2세 라기엔 규모도 없고 내가 제대로 된 뭔가를 받은 적도 없다. 예전엔 이 애매한 포지션이 싫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역으로 활용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공구 시장에 여태 없었던, 앞으로 없을 일들을 내가 만들고 싶은 욕심이 꾸물꾸물 나온다.


(스웨덴 프리미엄 수공구 브랜드 훌타포스 쇼룸 기획기)


이번에 한 수공구 브랜드와 새로운 협업 기회가 생겼다. 120평 남짓의 공간에 브랜드 쇼룸을 만드는 프로젝트인데 오래간만에 설렘을 느낀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공구 시장에 혁신을 불어다 줄 일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1.5세 공구상인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날 것 같아 더욱 기대가 된다.





 이 콘텐츠는 울산대표 건축자재백화점 '연암철물'과 제휴하여 제작하는 월간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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