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 브랜드 에세이 #1] 훌타포스(Hultafors)
전동공구 브랜드들과 비슷한 레드 컬러, 전통적인 기능들의 수공구 라인, 해외 직구로만 쓸 수 있는 희소성 등 그리 내 눈에 띄지 않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이 브랜드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나니 훌타포스는 내 마음 속에 서서히 매력적인 브랜드로 다가왔다. 스웨덴의 Hultafors라는 지역의 이름을 따온 브랜드, 자국 내에서는 이케아만큼 사랑받는 브랜드,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제품력의 브랜드.. 훌타포스가 지닌 유산과 명성은 어느 브랜드도 따라 못할 그 이상이었다.
훌타포스의 시작은 대한민국으로 치면 무려 조선 고종 시대,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웨덴은 측량법의 뒤늦은 개정으로 시끌시끌했고 스톡홀름의 건축가였던 Karl-Hilmer Johansson 은 인치와 미터를 같이 볼 수 있는 자(Ruler) 고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휴대성과 여러 각도로 측정할 기능을 더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접자(Folding Rule)이었다. 이 접자의 양산이 곧 훌타포스의 시작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수공구가 생산되었다. 훌타포스라는 이름은 1907년 본사를 스웨덴의 지역 Hultarfors로 옮기고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지역 특성상 숲이 우거져있고 나무 가공이 일상적인 스웨덴의 지역 특성 덕분에 훌타포스는 임업 관련 공구인 망치, 도끼의 제품력이 뛰어나다. (특히 도끼를 생산하는 대장간은 30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고) 이 밖에 드라이마커, 레킹바, 수평기 등 다양한 수공구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목수들에게 드라이마커와 커터칼이 인기가 많다. 훌타포스 제품은 기능과 더불어 고객에게 전문성을 어필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좋은 브랜드는 제품을 넘어 사용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훌타포스가 제대로 증명하고 있다.
https://smartstore.naver.com/09life/products/7836887238
훌타포스의 제품은 깔끔하고 심플한 게 특징이다. 세월이 흐르며 크기가 작아지고 집약적으로 기능이 더해지는 요새 공구 트렌드와는 달리 자신의 본래 기능, 기술자의 전문성 하나에 포커싱하는 특징이 있다. 훌타포스의 탄생을 알린 접자는 처음 모습 그대로 타 메이저 브랜드들과 경쟁하며 지금까지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중 하나이다.
우거진 침엽수의 숲 한 가운데 작은 오두막이 있다. 이 가까스로 전기가 들어오는 이 오두막은 알고 보니 어느 장인의 작업 공간이다. 이 장인은 옛날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오던 수공구를 가지고 나무를 가공한다. 톱으로 밀고 당겨 나무를 자르고 망치로 끌을 타격하여 나무를 미세하게 깎아낸다. 기계보다 정교하진 않는 제품일 수 도 있으나 사람의 손길이 묻어나는 따뜻한 나무 제품이 완성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8CqaaA2I4E
훌타포스는 140년의 스웨덴의 오랜 문화가 녹아든 브랜드이다. 특히 제품을 함부로 새로 사지 않고 고쳐쓰는 '근검절약' 정신은 훌타포스의 제품 내구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배경이다. 현재도 훌타포스에서는 100년이 넘는 오래된 도끼 제품들이 실제 존재한다. 손때가 묻은 나무자루와 자글자글한 스크래치의 도끼머리 외형 속에 아직도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모습은 세월에 따르지 않는 제품의 단단함을 보여준다.
훌타포스는 작년 12월, 한국에 공식 수입되었다. 공식 수입사인 노르딕툴즈는 스웨덴에서 오랜 생활을 해온 송민하 대표가 설립한 공구 유통 기업으로 스웨덴의 정취와 비슷한 한탄강이 흐르는 경기도 포천에 위치해 있다. 현재 훌타포스 전문 쇼룸 오픈을 준비 중이다.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훌타포스 쇼룸 오픈식이 열리니 한번 참여해보는 게 좋겠다. 국내 공구 브랜드에서 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 방식이 궁금해진다. (훌타포스 쇼룸 오픈식을 클릭하여 참여 신청 가능)
https://www.instagram.com/nordictools_korea/
2014년 이케아가 한국의 가구 문화를 송두리째 바꿨던 기억이 뚜렷하다.
심플한 원목 디자인과 정갈한 색조합의 가구 그리고 직접 조립하는 DIY 문화까지 이케아는 한국의 주 문화를 한단계 진화시켰다. 이제 훌타포스의 차례이다. 빠르고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잠시 느려지고 단순해지는 순간, 자칫 일상에서 지나쳤을 공구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는 순간 등 스웨덴 수공구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훌타포스를 들여다 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