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준
#13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랬더니 친구가 말했다.
- 뭘 만들 건데?
- 강연 강좌 콘텐츠.
나는 당연히 친구가 어떤 콘텐츠냐고 물을 줄 알았다.
- 어디다 팔 건데?
- 모객을 해야지.
- 마케팅 수단이 뭔데?
다른 친구에게 말해보았다.
- 네트워크 있어?
- 삼촌이 사업을 크게 했었잖아.
- 삼촌이랑 같이 하는 사업이라고?
- 응.
나는 당연히 가족끼리는 사업하는 게 아니라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삼촌이라니 사기는 안 당하겠다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 삼촌은 왜 너랑 사업한대?
- 응?
- 그렇잖아. 크게 사업했던 사람이 왜 너랑 하냐고.
나에게 가장 호의적인, 보컬리스트 친구에게 말해보았다.
- 임원이 네 명이라고?
- 응.
-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런 조직은 오래가지 못해.
- 네가 뭘 해봤는데?
- 공연을 많이 해봤잖아? 보컬이 네 명 있는 공연이 왜 없는지 아니?
상업적인 활동도 마다 않는다는 미술가들을 만나보았다.
- 완전 끝내주는데요?
- 그렇죠?
한 명이 극찬을 하자 다들 한마디씩 했다.
- 무엇보다 예술가들을 위한 사업이라는 게 맘에 들어요.
- 그렇죠?
- 이윤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재건하는 사업이라니, 이런 거야말로 미래산업이죠.
역시, 다년간 비즈니스를 해와서인지 용어가 세련돼 있었다. 내가 채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경쟁하듯 명함이 날아왔다. 영문을 모른 채 앉아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반귓속말로 말했다.
-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업계 최저가로 모시겠습니다.
순식간에 영문을 되찾게 해주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며칠 뒤 첫 번째 임원회의가 있었다.
- 일단 우리가 처음으로 추진해볼 사업은 외교관 만찬회와 시이오 조찬회입니다.
- 그게 뭔데요?
- 외교관 만찬회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설명 좀 해주시죠.
삼촌과 선생님 사이에서는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인 듯싶었다.
- 외교관 만찬회는 그러니까 주한 대사관과 유수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찬회입니다. 대사관 측에서는 본인 나라의 문화를 전파하고, 기업인들은 해외사업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됩니다. 시이오들이 한번 모일 때 쓰는 회비는 오십만 원 이상입니다. 열 명의 시이오를 모으면 회당 오백이고, 한 달에 한 번씩 열두 번을 세트로 묶으면 모임 하나당 이천만 원 정도의 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 선생님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나도 간략하게 질문했다.
- 그럼 강연 강좌는 대사관 측에서 하는 건가요?
- 책자나 피피티 자료 등은 우리가 만들겠지만 강연 자체는 대사나 보좌관이 직접 하게 될 겁니다.
나는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 누구에게 팔 건데요? 그러니까, 기업인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거죠?
장 선생님이 삼촌을 쳐다보았다. 이것도 둘이서는 사전 합의한 사항인 듯했다.
- 한 명씩 한 명씩 모으는 건 쉽지 않고, 시이오들한테는 지들끼리 사모임이 있어요. 어차피 모이는 거 대사관 테마강연을 콘셉트로 제시하면 좋다고 할 사모임 많을 겁니다. 일단 하나부터 시작해서 몇 개의 사모임으로 늘어나면 우리에게 다른 모임에 소개해줄 네트워크 풀이 생겨나는 거고요.
나는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을 하나 더 기억하고 있었다.
- 좋아요, 그럼 대사관은 어떻게 끌어들이실 거죠?
삼촌이 장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 제가 아프리카 쪽 대사들과 친분이 있습니다. 대사관으로 초대받은 것도 몇 번 되고요. 일단은 친분이 있는 쪽으로 시작해서 성사시키면 다른 대사관을 공략하기에도 유리해질 겁니다. 이미 했던 자료를 가지고 영업을 하면 확률이 높아지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구 대표와 명 실장도 수긍이 잘 간다는 태도였다. 옛 말마따나 세월은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삼촌과 장 선생님은, 그러니까 어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 시이오 조찬회에 대해서는 어느 분이 설명해주실 건가요?
구 대표가 물었다. 삼촌이 입을 열었다.
- 시이오 조찬회는 이미 형성된 시이오 조찬회 모임에 시이오에 대한 강연을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모으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서비스인 셈이지요. 보통 클래식팀이나 재즈밴드 등을 부르곤 하는데 그 정도 인건비면 충분히 강사 한 명을 파견할 수 있습니다. 대사관 만찬회와 영업대상이 일치하니 마케팅 타깃이 좁아져서 더 좋고요.
- 시이오에 대한 강연이라고 하셨는데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구가 묻자, 장 선생님에게로 바통이 넘어갔다.
- 세계적인 시이오들의 경영전략에 대한 강연입니다. 교재를 잘 만들어놓으면 종이책으로도, 이북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 이차 콘텐츠 확산 효과가 있고요, 역시 열두 번을 한 세트로 연회비를 받을 생각입니다. 본격적인 분석 대상이 될 시이오는 록펠러, 스티브 잡스, 아이카와 요시스케, 워렌 버핏….
장 선생님의 리스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만 빼고.
차라리 모르면 좋을텐데, 윤리의식이 발동한 탓이었다.
록펠러는 잘 알려지다시피 미국의 석유왕이었다. 근검절약과 막대한 기부금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정경유착과 인수합병으로 돈을 버는 독점재벌의 원형을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이 정도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알겠지. 하지만 장 선생님, 아이카와 요시스케라니.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이론이었다.
분파학문이 올림픽 종목에 해당한다면 인문학은 올림픽 운영의 문제점이나 개선점, 더 나아가 올림픽 자체의 패악을 논하는 장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인문학은 그랬다. 기업은 공정함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상의 이윤을 뽑아내면 된다. 전쟁과 기업의 관계를 생각하면 자유경쟁이란 허구이다. 세계대전은 시장에서의 경쟁 없이 막대한 세금을 지원받아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였다. 대다수의 핵심기술이 무기에서 왔다. 카메라와 렌즈는 폭격기의 조준경을 만드느라 크게 발달했다. 전자레인지의 원리는 레이더병에 의해 발견되었고, 컴퓨터는 암호를 풀기 위해, 인터넷은 핵무기를 통제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내비게이션은 구형 크루즈 미사일 기술이다. 약간의 지연시간이 있어 타깃 주변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없이 많은 중동의 어린아이들이 죽었다. 한때는 일 년에 만 명씩.
그런데 아이카와 요시스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