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즈음하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나는 조세희 작가의 ’난쏘공‘이 떠올랐는데, 내용은 난쏘공보다 훨씬 적나라하여 읽기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데 또 내려놓기도 어려워 아주 곤혹스러웠다. 결국 꾸역꾸역 한숨을 쉬며 읽어 나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몇번을 숨죽여 꾹꾹 울었는지 모른다. 다 읽고 나서는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어서 같이 있던 아내와 아들을 당황시키고 말았다.
작가가 어떤 일을 기록해서 남기는 이유는 그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또한 그 일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잊지 않는 것은 분노와 원한을 품고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더 빨리 잊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하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해자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빨갱이 운운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그 자유는 소원하기만 하지만 여전히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잡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덮어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망각일지언정 해결은 아니다. 해결이 없이 잊혀진 기억은 언젠간 다시 떠올라 여전히 아물지 않고 남아있는 상처를 헤집을 뿐이다. 헤집혀진 상처는 적응되지 못한 고통으로 전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이제 한 쪽은 많이 곤란해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80년도의 그 끔찍한 사건을 비롯하여 부끄러운 당시의 시대상이 세계사 속에 영원히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도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가와 작품을 그 모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쁘고, 그 다음으로는 슬프고 끔찍한 역사적 사건들이 보다 널리 세계에 알려져서 더욱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 그래서 더이상 편협하고 몰상식한 목소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수상 시기가 너무 적절하다. 나는 지금의 정권이 우리나라를 80년대로 회귀시킬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고 또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지금의 정권이 그런 회귀를 대수롭지 않아 하고 있다는 건 틀림이 없다고 본다. 그런 때에 수상소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브레이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오스카상, 에미상에 이어 노벨상까지 탄 예술가들이 모두 과거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이라며 재밌어하는 만평을 봤다. 세상은 얼핏 돈과 권력에 의해 돌아가는 것 같아 보여도 예술은 거기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노벨문학상
#한강
#소년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