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 짱쓸 Mar 18. 2016

#38.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옆에 있다는 것


20대 후반, 일상이 피곤했는지 가위 눌린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평소 꿈은 많이 꿔도 잠결에 이상한 것을 본다거나 한적은 없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눈은 떠져있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종종 겪었다.


잠에서 깨려 아무리 발버둥쳐도 몸은 움직이지 않고 귀에서는 자꾸 정체모를 인물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심할 때는 날 죽이겠다는 협박성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난 귀신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다. 심신이 피로해 편안한 수면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겪는 일종의 신경질환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무서운건 어쩔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종종 가위에 눌렸다. 옆에 있는 그를 깨우려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가위에서 풀리면 괜히 죄없는 그를 깨워 "왜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도 안 깼느냐"며 투정부렸다.


가위가 눌린다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 나는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그가 그것을 모른채 숙면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속상했다. 사실 속상할 일도 아닌데 그저 무서웠던 것 같다.


이후로 그는 나와 함께 잠을 잘 때에는 꼭 팔배게를 해줬다. 품 안에서 재우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함이 느껴지면 바로 깨워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워낙 잠을 깊게 잘 자는 그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나의 가위눌림을 먼저 포착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를 꼬옥 끌어안고 자는 날엔 신기하게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그에 대한 편안함과 신뢰감이 내 심신에 영향을 줬나보다.


그와 결혼한 이후 난 가위에 눌리지 않는다. 새 가족으로 들인 반려견이 그와 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자는 바람에 연애시절처럼 꼬옥 끌어안고 잘 수는 없지만, 단지 옆에 함께 하는 편안함이 나를 숙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무언가 하지 않아도 단지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다. 혼자였다면 절대 해결하지 못했을 수많은 일들이 내 옆에 함께 하는 사람덕분에 어렵지 않게 풀릴 때가 많다.


단지 옆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37.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