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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Jul 01. 2022

어쿠스틱 기타를 샀다

손가락이 굳기 전에

 어둠 깊은 곳에 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작은 램프조차 제 앞의 것만 겨우 밝힐 뿐이다.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본다. 감각의 더듬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더듬이가 나올 시간을 충분히 주라. 그러면 서서히 낮동안 익혔던 사물이 손에 잡힐 것이다. 어둠이 모든 색깔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어둠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어둠 속에 무엇인가 알 수 없다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공포와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색을 잡아먹은 어둠이기에 감추고 싶은 자들에게는 어둠만한 좋은 친구가 없다.

 어둠속에서 가만히 서서 담배를 붙여보면 어둠 속에서 붉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담배를 볼 것이다.

붉게 타들어가는 미소가 둥둥 어둠에 떠있다.

 나는 어쿠스틱 기타를 샀다. 어둠에 둥둥 떠있는 담배의 불꽃같은 마음일지라도 일단 질러봤다.

그 물체가 내곁에서 비싼 소리를 낼 때에 샤넬도 부럽지 않았다.

기어들어가거나 날라다니는 음치박치를 즐기면서 소리는 영악하게도 좋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때 오빠가 치던 기타가 있었다. 형편이 넉넉하진 않아도 장남에게는 무한정 물질 공세가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오빠의 혜택은 원하는 건 그래도 엄마가 미친듯이 밀어줬다.

 권투 장갑, 야구방망이, 축구화, 배드민턴체, 세계전집, 자전거....

오빠는 모든 것을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불만족 상태였다.

 그런 오빠옆에서 오빠의 실증을 기쁘다 구주 오심으로 반긴 것은 잠시나마 물건의 소유가 이전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기타를 만져도 화내지 않을 정도로 기타는 그저 그렇게 구석에 빗자루처럼 취급되었다.

그때였다. 그때가 바로 나의 때가 왔도다. 나는 내것인양 낡은 기타를 가지고 놀았다. 기타코드가 있는 노래모음을 눈알이 빠지도록 보고, 또 보면서 나는 겨우 기타 초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방학 때 놀러왔던 외삼촌의 딸인 향순언니가 기타를 쳤다. 두 곡의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쳤는데 나는 그냥 뻑이가요 뻑이갔다. 언니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오빠도 멋있었는데 언니가 치니 아름답기가 한량없었다.

 꽃반지 끼고. 너의 침묵

코드 몇 개를 외우고 무한 반복쳐대니 손가락 지문이 기타줄에 눌려서 물집이 잡히고 딱지가 앉았다.

그것을 기점으로 나는 기타칠 줄 아는 여자가 되었다.

 나의 열정이 옮겨 가는지 두 살 아래 남동생도 기타를 붙들더니 나와 번갈아가며 시합하듯 노래를 불러제켰다. 오빠가 나타나는 날이면 오빠가 하루 종일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오빠의 솜씨 앞에는 끼지를 못했으므로 그저 옆에서 노래 추임새를 넣거나 아는 노래를 같이 불러주는 정도였다.

 그래도 어려운 그 시절임에도 낭만이 철철 넘쳐 흘렀다. 남학생은 기타 하나쯤은 가져야 남자 취급을 해줬다.

앞에는 검은 오십천이 흐르고 개천 옆으로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의 냄새가 진동했지만

지금은 그곳이 참으로 드문 곳이라는 것에 자랑스럽다.  추억 돋아날 수록 그 땅의 묘미를 느낀다.

내가 참 아름다운 곳에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지나고 보면 보인다고 세월이 지나고 보니 검은 물도 누런 물도 맑은 물로 바뀌었고 그렇게 산속에 틀어박힌 듯한 오지처럼 느껴졌던 그 땅이 나만의 비밀 아지트였다는 것이었다. 도시가 부러워 도시에 살고 보니

물소리도 그립고 산들의 풍경도 그립다. 그때는 왜 그토록 그 읍을 떠나고 싶어했던가. 좁다는 생각, 산이 가로막힌 답답함,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래서 나는 노래를 했고 기타를 쳐댔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삭막한 나 자신을 본다.

음악도 잊고, 열정도 잊고, 눈알 하나가 세상 밖으로 외출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나는 비뚤어져있다.

  6월 최근 희망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현장실습 중 기타를 치는 프로그램을 참관하게 되었다. 기타 소리가 이렇게 좋았나 할 정도였다.

그래서 기타를 할부로 지르고 노래도 질렀다.

 잘한 짓이다. 잘한 짓이야. 그래 잘한 짓이지.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나라지.

<너의 의미>를 부르며 뭔가 나의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그런 날개 돋는 감성이 생겼다.

소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소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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