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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명 Feb 14. 2021

성당 가는 길

"아빠, 걸어서 성당 가기 싫어. 힘들고 귀찮아. 차 타고 갈래."


막내딸이 집에서 성당까지 걸어서 가자고 하니 온갖 변명과 투정을 부린다. 집에서 성당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아내, 큰딸, 막내딸, 그리고 나 이렇게 성당까지 걸어간다. 제주에 살면서 호사(好事)를 누리는 시간이다. 애월 해안로를 따라 성당 가는 길은 바다와 섬이 가지는 아름다움 자연 그 자체다. 성당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석양을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해변의 석양보다 더 아름답다. 그 색체와 강렬함 때문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길이 좁아 자연스럽게 둘씩 짝꿍이 된다. 난 막내딸과 아내는 큰딸과 짝이 된다. 막내딸은 끝말잇기를 하자고 한다. 걷는 동안 끝말잇기는 걷는 지루함을 달랜다. 한참 동안 하다가 나에게 다른 놀이를 제안한다. 동물 이름 맞추기 놀이다. 몸짓으로 동물을 흉내 내면 정답이라고 외치고 맞추는 놀이다. 길을 걷다가 동물 흉내를 낸다는 것이 여간 어색하지만 기꺼이 놀이에 동참한다. 아내와 큰딸은 수다를 떨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마도 큰딸은 드라마, BTS, 연예기획사 등 다양한 주제로 아내와 재잘대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어느새 성당 근처 문구점에 가까워진다. 막내딸은 행복과 환희에 찬 표정으로 "오늘 잘 걸었지?" 하면서 문구점을 들어가 최애 하는 인형을 집어 든다. 



 글을 쓰는 과정도 성당 가는 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글을 쓰기 전에 귀찮고 힘든 과정이 예상된다. 그러기에  온갖 변명과 이유를 댄다. 마치 막내딸이 투정하듯 말이다. 하지만 걷기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걷기에 몰입한다. 글쓰기가 끝날 무렵 딸이 인형을 집어 들듯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있다. 글 쓰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치 막내딸과 놀이를 통해 걷기를 즐기듯 말이다. 지금은 글쓰기 온도 0도다. 글쓰기의 온도가 끊기 시작하는 점을 찾는다. 그때가 언제쯤인지는 모른다. 서서히 데우다 보면 글쓰기 온도는 어느새 100도에 도달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밀운불우(密雲不雨)라고 했다. 구름 안에 물을 잔뜩 머금고 있는데 비를 뿌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누가 아는가 언젠가 소나기 같은 폭우가 쏟아지면 곧장 소설이 될 것이요. 또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보슬비처럼 시가 되어 내리는 날이 올는지. <강원국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도 나에게 얘기한다. 당신은 밀운불우(密雲不雨)처럼 잠재된 글쓰기의 역량을 머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역량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글쓰기를 하는 여정에서 늘 기억하고 되뇔 것이다. 언젠가 폭우가 쏟아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끊임없이 최면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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