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만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지난 게시글 <백수의 프리워커 도전기 2: 시작하기 천재>에서는 말 그대로 ‘시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작은 시작들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는 이야기들을 담아봤다.
* 작업실 갖기: 시공간의 주도권 가져오기
작업실이라고 하면 따로 사무실 같은 곳을 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작업실은 내 방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 있는 2.7평짜리 내 방. 그마저도 단단한 돌침대가 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벽의 한 면 전체가 붙박이 장이다. 좁은 방에 책상까지 놓기에는 답답해서, 방에서는 잠만 자고 부엌의 식탁을 내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가족들은 거실 탁자를 활용한다). 당연히 가족들이 오가는 동선과 겹쳤고, 그만큼 시선과 주위를 많이 뺏길 수밖에 없었다.
늦잠을 자고 유튜브만 보며 띵가띵가 했던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글쓰기, 에디터 캠프, 북서포터스,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 등 하는 일이 하나둘 늘어나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방에 있는 돌침대를 빼버리고 책상을 방으로 옮겨왔다. 바닥에서 자야 했지만 10살 때 이후 푹신푹신한 침대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상관없었다. 그렇게 내 서재가 마련되었고, 나만의 서재에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작은 변화가 주는 통제감과 몰입력은 일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 유튜버 데뷔: 남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소재로 여러 채널(장르, 분야)에서 여러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나의 콘텐츠 소재와 채널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소재: 글(장문/주로 일상, 생각을 담은 글)
채널: 노션(목요일의 글쓰기)
특징: 목글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볼 수 있음
2) 소재: 사진+글 또는 릴스(단문/책, 리추얼루틴과 관련된 내용)
채널: 인스타그램
특징: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음
멀티유즈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느낌이 있다. 우선 채널 수가 2개밖에 안 된다. 좀 더 확장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유튜브에 손을 댔다. 글-사진 다음에는 영상 아닌가? 잠시 고민을 했다. 얼굴을 깔 것인가 말 것인가? 어차피 할 거 시원하게 얼굴 까고 해 보자. 남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 유튜브 하면 하는구나~ 하고 말 것이다. ‘아님 말고’라는 마음으로 계정을 만들고, 내가 영상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쭉 적어보았다. 10개의 콘텐츠가 생각나지 않으면 준비가 덜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루려고 했는데, 앉은자리에서 12개를 써 내려갔다.
영상 기획법, 영상 찍는 법 등 유튜브에 조언을 구하려 검색해 보다가 한 두 개 보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봤자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터였다. 그리고 조언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잘하는 상태에서, 더 좋은 장비가 갖춰진 후에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영상을 꺼버렸다.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퀄리티만큼만 뽑아서 시작이라도 하면 되지. 신중한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놈의 준비 때문에 시작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때론 실행과정보다 준비과정이 중요할 때가 있다). ‘영상 100개 올릴 때쯤이면 익숙해져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유튜브에 첫 영상이 올라갔다.
* 5시 기상: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정하기
목요일의 글쓰기, 직업탐구캠프, 에디터캠프, 북서포터스, 인스타그램 계정 2개와 유튜브 채널 운영. 단기간에 벌려둔 일이 많아지니 하루의 사이클이 점점 내가 할 일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바쁘게 쳐내야 하는 일들은 아니지만 단조롭던 삶에 작은 물결들이 점점 하나의 파도로 뭉쳐지는 느낌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새 묵직해진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시간적 자유를 위해 프리워커의 삶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 만난 책이 허두영 작가의 <데일리 루틴>이라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매일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루틴을 통해 하루를 살아가는 여러 모습들을 알려주었다. 이미 하루의 일부를 루틴화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내가 통제하지 못해서 시간을 날려버리거나 비효율적으로 쓰는 모습도 적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밤 12시-1시쯤 자서 다음 날 10시쯤 깨는 수면 패턴을 갖고 있었다. 일어나면 오전에 1-2시간 핸드폰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점심을 먹고 졸리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내가 벌려둔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그리고는 5시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또 책을 읽거나 벌려둔 일을 처리했다. 8시쯤 운동을 하고 씻고 누워 또 눈이 감길 때까지 2-3시간을 핸드폰을 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 호흡을 더 길게 가져가고 싶었다. 이제 나는 일정한 시간 동안 회사 의자에 앉아 주변의 분위기에 맞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내가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해야 했다.
우선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5시에 일어나기 위해 전날 밤 10시에 잠이 들었다. 당연히 처음 며칠은 익숙하지 않아서 이게 맞나 싶었지만 6시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오전 시간을 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점심을 먹고 2-3시쯤엔 20분 간 낮잠을 잤다. 책에서도 낮잠을 추천해서 실행에 옮겨보았는데, 20분의 낮잠은 몽롱한 정신을 다시 깨워주는 데에 큰 효과가 있었다. 오후에는 일을 하지 않고 외출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오전 5시 기상을 루틴화한 지 딱 20일이 됐다. 알람에 맞춰 바로 일어나는 일은 아직 힘들지만, 이건 몇 시에 일어나나 마찬가지였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일찍 일어나서 내가 벌려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일으켜지기도 한다.
일어나 이불을 개고, 물을 마시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에 책상에 앉으면 자동적으로 내가 할 일들을 해나간다. 성경을 필사하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고, 영상 대본을 쓰거나 편집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들의 소식을 확인한다.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이 모든 것을 힘들이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 브런치 작가 신청: 쓰는 사람이라도 되자
최근 가장 마지막으로 벌인 일이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이다. 문단에 등단을 하는 것도, 전업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겐 큰 의미가 있다.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지만 독자는 단 3명이었다. 그 3명도 소중하지만, 쓴 글이 여러 편 쌓이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 내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 책 계정 친구인 어느 분이 브런치 작가 신청 후 떨어졌다는 글을 올렸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게 조금은 민망해서 모르는 척하면서 어느새 내 손은 브런치 사이트를 검색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누가 더 잘 쓰고 못 쓰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기 엄마, 경비원, 공무원, 백수, 스타트업 대표 등등 모두가 글을 쓰고 있었다. 나 스스로 작가도 뭣도 아니라고 정의할 바엔 쓰는 사람이라도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작가 합격 메일을 받은 순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은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뭔가가 차올랐다. 이 작은 성취감이 장작이 되어 이걸로 8편째 글을 올린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시작으로 또 어떤 일을 벌이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뭐든 내가 좋아하는 선택을 할 거라고 확신한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본 경험과 감각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손끝 발끝까지 떨림이 전해진다. 이 느낌에 중독되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열심히 외치고, 또 선택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해서 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인정욕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면의 욕구에 따라 한 일이기 때문에 보상심리도 적다. 물론 구독자 수, 좋아요 수가 높으면 좋지만 내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기록이 쌓이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다. 나중에는 쌓인 글을 책으로 내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럼 나 혼자도 만들 수 있는 독립 출판물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그 책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을 남길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한 일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맛보고 더 깊은 몰입에 가는 과정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