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J CllWOO Sep 26. 2019

신을 사랑한 엄마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

5부.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다양한 사고를 하는 엄마를 항상 아버지 본인만의 방식으로 살도록 고집하셨었다.

엄마가 보는 다양한 책들을 버리시면서 엄마에게 '여성동아' 잡지를 사줄 테니 그것만 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아버지는 겉으로 만큼은 남들 눈에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고 싶으셨었다. 지금이야 돌아가신 지 10년쯤 되다 보니 '그런 과거가 있었지' 정도로 생각되지만 그 시절을 보낸 당시에는 어린 나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본인이 통제하길 바라셨다.

이런 일들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반복되다가 결국엔 '어떤 일'로 인해 엄마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셨고, 나와 동생과 엄마 이렇게 셋이서 엄마의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갔다. ('어떤 일'이라 하면, 아직까지는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보니 엄마가 크게 다치게 된 상황이었다 정도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내 입장에서는 청소년 시절의 모든 교우관계와 학교생활을 갑자기 칼로 베어내듯 자르고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사이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겐 그 시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될 수도 수도 있겠지만, 나조차도 그 당시에는 아버지에게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따로 사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의 제주행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충분한 심적 고통이 이미 깔려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삶의 길이 갈라지면서부터 엄마의 인생도, 나의 인생도, 동생의 인생도 정말 다이내믹하게 휘몰아치게 되었다. 결론적으론 다들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좋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참 많은 어려움들을 넘어온 것 같아 가끔은 짠하고 고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로 내려온 이후 엄마는 6개월 간의 인도 여행을 꼭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었고, 그때의 나는 변화된 환경에 맞춰 모든 것을 리셋해보겠다는 다짐하에 그동안 등한시했던 공부에 빠지게 되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공부가 가장 재밌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다만, 아버지의 예외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항상 받아왔던 동생이 어쩌면 가장 힘든 시기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신을 사랑한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