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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y Jul 11. 2016

[과거]삶을 결정하는 방식.

그녀의 눈물에도 불구하고.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눈물이 나는 걸 어쩌냐고. 나도 안 그러고 싶은데 눈물이 난다고.”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시던 엄마의 바쁜 손이 잠시 멈추더니 떨군 고개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날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노라고 선포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이었다. 결혼, 그리고 곧 이은 임신 후 8개월. 지난 10여 년간의 사회생활을 접고 직접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는 딸의 선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넉넉지 못한 형편에 그리 잘나지도 않은 성적을 들고 바득바득 우겨서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진학한 딸. 비싼 등록금이 버거워서 항상 용돈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무슨 믿을 데라도 있는 것처럼 "엄마 나 잘할 거야." 이렇게 말했던 딸. 엄마는 당신이 평생 겪어온 경험의 범위를 지역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넘어선 딸의 그 말을 믿고 정성스러운 반찬거리, 적게나마 용돈을 보내는 일이 딸을 위한 당신의 최선이었다. 그러다가 과연 어느 날인가 그 딸이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에 취직했단다! 그 소식을 듣고 엄마는 조용히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좋은 일일수록 너무 자랑하는 게 아니라며, 항상 겸손해야 그 행복이 이어지는 거라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엄마는 서울에 올라오실 때마다 회사 건물을 지날 일이 생기면 마치 처음 보는 곳인 것처럼 몇 번이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이고, 우리 딸이- 이 서울 한복판에서- 저렇게 큰 건물에서- 장하다-”

 



  그런 딸이 결혼하고 임신하더니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 한다. 무슨 일이든 나보다 잘나고 믿음직하게 결정해온 딸이지만 이번만은 정말 아닌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빨래하고 밥하는 가정 주부가 되겠다니. 그건 당신이 반평생 이제까지 지겹도록 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그러려고 넉넉치 않은 살림에 대학공부까지 시키건 아니었는데. 나보다 더 낫게 살라고,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더 크고, 더 멋지게 살라고 기꺼이 감당한 일이었는데. 그 희망과 기대로 힘들어도 버티면서 많이 울고 또 웃었었는데. 그런데 나보다 더 잘난 내 딸이, 나처럼 집안에 들어앉겠다니. 엄마는 차마 말을 다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엄마와 함께 또는 따로 살아온 나의 인생 이야기를 복기하자면 상황은 많이 다르다. 첫째, (당연히)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잘나지 않았고  둘째, 전화기선 너머로 미쳐 다 다 담지 못한 엄마의 걱정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저 그 순간 귓속을 파고드는 무게가 싫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엄마 나 잘할 거야".  셋째, 엄마가 자랑스러워 마지 않았던 바로 그 큰 건물의 회사는 생각보다 나를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고 있었다.




  공채 입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는 차별이 존재했고 나는 그걸 느낄 때마다 내 역할에 대한 한계와 미래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남편의 지방 취직, 인수합병으로 시작된 희망퇴직 권고는 나의 의문에 더욱 큰 물음표를 찍어댔다.


  생각해보니 물음표 말고 느낌표도 있었다. 내 자리를 탐내느라 온갖 모함을 뿌리고 다녔던 그 X에 대한(아우, 입이 거칠어질뻔했다) 머리 끝까지 찬 분노. 새벽 1,2시까지 미친듯이 이어지는 회식이며, 행사와 각종 모임, 자기네 편만들고 또 거기에 끼기 위해서 비굴하게 노력하는 사내정치의 꼬락서니(아, 위험했다.). 이 모든 걸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그 당시 퇴직은 나를 살리고 나의 가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만두면, 모든 게 다 편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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