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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Feb 12. 2022

스타트업은 이렇게 일합니다

shoot the moon

나는 스타트업 출신이다. 사회생활 6년간 300명 미만의 회사에서 근무했고 그중 절반은 이름 들어도 모를 곳이다.


그러다 운 좋게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스타트업은 규모도 작고, 돈도 조금 주고, 일은 많잖아요. 대기업 오니까 훨씬 좋으시죠?”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받았지만 머릿속에선 물음표가 떠올랐다.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못한 곳인가?


10만 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일반화시킬 순 없지만, 최소한 주변을 통해 경험한 스타트업은 많은 시사점을 갖고 있었다. 정체된 조직 문화를 개선시키고 싶거나 스타트업 취직을 준비한다면 필독.






#에자일

이 글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에자일(Agile)"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에자일이란 "유연하게 일하는 방식"을 뜻한다. 과거 상위 조직에서 하위 조직으로 폭포수처럼 진행되던 업무 방식(워터폴, Water-fall)에서 벗어나 오직 업무에 초점을 맞춰 빠르게 일한다.


사실 에자일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 가능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내 대기업은 아직까지 관료주의에 머무는 중이다.


워터폴 방식. 각 조직별로 업무를 진행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수정이 어렵다.
에자일 방식. 업무에 필요한 인원이 모여 빠르게 업무를 완수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수정이 쉽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워터폴은 기획팀, 개발팀, 디자인팀 등 기능 단위로 구성되어 기획이 끝나면 디자인을 하고 그다음 개발을 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일한다. 팀 내에서도 부장, 차장, 대리 등으로 계급과 절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완수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정이라도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농업, 제조업, 금융업처럼 변화가 적은 산업군이라면 기존대로 일해도 문제없다. 그러나 IT처럼 시시때때로 요구사항이 변하는 산업군은 사정이 다르다. 몇 년만 지나도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따라서 똑똑한 조직은 에자일 방식을 차용했다. 그렇게 배달의민족, 토스, 쿠팡, 크래프톤 등의 스타트업은 단 기간에 기업가치 1조 이상의 유니콘이 될 수 있었다.


변화는 문제가 아니다.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 문제다. - Kent Beck, Extreme Programming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스타트업의 기본 공식은 "빠른 속도"다. 대기업에 비해 사람도 돈도 시간도 없으므로 시장을 정확히 타겟팅하여 빠르게 세상으로 내보내 반응을 살핀다. 그러므로 속도를 저해하는 요소들은 과감히 생략한다. 불필요한 절차나 보고 체계, 문서 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나의 PO(Product Owner, 내가 일하던 곳에선 팀장을 의미했다)님이 항상 강조하시던 말이 있다. "80%만 완성해서 보여주세요." 100% 완벽한 문서를 작성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 업무의 빠른 진행을 위해 매일 오전 스크럼 회의를 통해 할 일을 공유한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기

보기만 해도 든든한 우리 마블리

스타트업 바닥은 전쟁터고 당신은 총알 하나 간신히 챙겨 나온 셈이다. 이 상황에서 니 일, 내 일 가르는 건 무의미하다. 목적지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갈 뿐이다. 스타트업에선 누군가 친절히 일을 가르쳐준다거나 보기 좋게 잘 정리하여 업무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당연히 컨펌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찾아 묵묵히 할 뿐이다.



#능력 위주의 채용

좀비 세상 속 샌님들 사이에서 쓸모 있는 건 군인 출신 "리" 정도

스타트업의 채용은 120%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이들의 원하는 인재상은 하나다. 지금 당장 의자에 앉아서 우리의 과제를 해결해 줄 사람. 고학력, 고스펙, 고연차라도 실무 인터뷰에서 우르르 떨어지기 일수다. 일례로 핀테크에 근무할 당시 금융권 개발 팀장들이 많이 지원했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외주 관리만 한 탓인지 실제 코딩 테스트에서 99%가 탈락했다.


그러므로 취준생이 흔히들 준비하는 요소가 사실상 스타트업 채용에서는 큰 변수로 작동하지 않는 편이다. 학점, 토익, 대외활동보다 우리 회사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고 어떤 일을 맡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스쿼드 팀

이렇게 멋있진 않지만...

스쿼드는 에자일 문화의 기본 문법이다. 스쿼드 팀은 기능 단위가 아닌 업무 단위로 팀이 구성된다. 레스토랑 주방을 예시로 들면 애피타이저 팀, 메인 팀, 디저트 팀으로 구성되는 식이다. 가령 디저트팀에 필요한 모든 직무, 즉 디저트 총괄 셰프(프로덕트 매니저/기획자), 조리사(개발자), 플레이팅(디자인) 등이 한 팀을 이룬다.


8인 이하의 소규모로 구성되며 워터폴로 순차적으로 일하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일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직무별로 기획 전 리서치를 수행하거나, 데이터 분석가가 기획을 제시하거나, 기획안과 동시에 디자인이 나오고, 개발자의 요청으로 디자인이 추가되는 식이다.



#수평적 분위기

요즘 조금 젊다 싶은 회사들은 하나같이 수평적 문화를 외친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수평을 겪어보지 않은 자들은 진정한 수평이 무엇인지 모른다. 단순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거나 직함만 뗀다고 수평적이 아님을.


스타트업에서의 수평은 민주적임을 뜻한다. 팀 리더라고 할 지라도 실무를 뛰어야 하고, 대표도 투자를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결국 제품 앞에 모두가 진심이다. 물론 전반적인 연령대 자체가 젊기도 하다. 전 회사는 극강의 수평을 위해 팀원이 매니저를 평가하는 상향 평가가 있었고, 매달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날카로운 질의응답도 나누었다.



#뼈 때려 순살 되는 평가

(출처: 마켓컬리)

3 스트라이크 제도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익명의 팀원에게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3번 지목을 받으면 잘리는 모 기업의 인사 제도다.


스타트업의 평가는 매우 신랄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는 분들이 많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강조하다시피 스타트업은 많은 시간과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단 뜻이다. 그런데 열심히 마저도 안 한다면? "Unacceptable(용인할 수 없는)" 레벨을 통보받고 이별 수순을 밟는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잘하는 사람에겐 상식 이상의 보상을 주어진다. 스타트업은 잘하는 사람을 내버려 둘 만큼 한가하지 않다.



#달성 불가능한 목표 설정

스타트업에서의 목표 설정은 "Shoot the moon, 달을 향해 쏴라"라는 말로 불린다. 따라서 대기업처럼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평가 시즌엔 성과율을 보는 KPI 목표 설정이 아니라, OKR(Objective and Key Result) 목표 설정을 한다. 일부러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후에 얼마큼 근사치에 갔는 지를 평가한다. 즉, 내 밥그릇 챙기는 수준을 넘어서 한계에 도전한다.



#높은 보상

재정 사정에 따라 보상 체계는 천차만별이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면 폭발적인 투자를 받는 시점이 온다.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스타트업을 선택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 상장이라도 하는 날엔 역사를 함께한 식구들에게 스톡옵션, 사이닝, 우리 사주 등을 주는 건 당연한 치사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회사의 재정 상태가 넉넉하고 당신이 회사에 중요한 인재라면 높은 보상은 당연하다. 스타트업에서 연봉 1억 이상인 분들 꽤 많다는 사실.






#이런 분들이 스타트업에 가면 좋아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능동적인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역량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창업을 꿈꾸는 많은 분들이 스타트업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다.


반면, 일에 대한 큰 욕심이 없다면 스타트업에서의 생활은 지옥일 수 있다. 누군가의 매니징을 필요로 하는 주니어 레벨 또는 수동적인 사람도 예외다. 스타트업도 이 유형의 사람들을 원하지 않으며,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대기업으로 가는 걸 추천한다.




출처

https://www.redhat.com/ko/devops/what-is-agile-methodology

https://www.agileconnection.com/article/neglected-practice-iteration

https://brunch.co.kr/@insu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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