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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ete Mar 29. 2016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자

베를린의 아침이 준 선물


 눈을 뜨자마자 그냥 웃음이 났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하늘이 맑았다. 창문을 열어도 보이는 건 그저 평범한 베를린의 옆 건물뿐이었지만 그것마저 좋았다. 문득 저 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겠지. 얼른 누군가 창문을 열고서 나처럼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주기를. 밝아온 아침을 나와 함께 만끽해주기를. 평소와는 다른, 조금 특별한 아침을 맞이하는 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기를. 비록 아무도 창문을 열지 않았지만, 마음은 벌써 누군가에게 밝은 미소로 손을 세차게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싶어 안달이 났다. 건물 사이를 비집고 햇살이 들어왔다. 내 표정은 한층 더 밝아졌다. 정말 좋은 아침이야. 오늘은 어떤 일이 생길까.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마음속에는 차고 넘쳐서 흐를 만큼 좋은 생각들이 가득했다. 상기된 얼굴로 잔뜩 기대를 하면서 오늘의 여행을 준비했다.


 작은 지도 한 장, 체크카드, 약간의 돈, 수첩과 펜, 카메라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셀카봉은 필수. 빠짐없이 담았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썼다. 신발은 가볍게 스니커즈 운동화. 혹시 모를 일교차를 대비해서 얇은 항공점퍼를 챙겼다. 간단한 옷차림이었지만 늘 평소에 내가 아끼던 것들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으로 입술을 물들이며 단장을 마무리했다. 나를 꾸미는 것은 늘 즐겁다. 특히나 여행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나를 꾸미는 행위조차 여행의 일부분이며, 나의 여행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수단이다. 특별한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쁜 상태로 여행을 맞이하고 싶은 욕심. 꿈꾸던 풍경 속에 가장 예쁜 모습으로 서고 싶은 순수하고 앳된 마음에는 꾸밈이 없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자!


 베를린의 첫 아침을 맞이하며 스스로에게 외쳤던 이 문장은 그 날 이후로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묻는다면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서...'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은 문장이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며 기대와 설렘이 마음을 꽉꽉 가득 채우고는 그것도 부족했는지 이 문장을 입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그런데 여행하는 내내,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매일 아침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내었다. 이 문장을 생각하면 베를린의 첫 아침을 시작하며 두근거리던 마음이 생각난다. 여행을 하는 내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 기대하며 설레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치는 것처럼 이 문장 하나로 나는 서울에서도 그때, 그곳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또한 반복에는 힘이 있다. 나에게는 어느새 하루를 기대하고 설레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와 설렘, 반짝이는 마음의 시작과 함께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에서의 첫 아침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비슷한 시간에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이 문장을 꾹꾹 눌러 메시지를 보냈다. 때로는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단체 톡방에서 나 대신 이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의 설렘을 나누었다. 나의 한 마디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좋은 기운을 나눌 수 있어서 뿌듯했다. 나는 그렇게 신선한 아침을 먹듯이 신선한 마음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조식', '맛있는'이라는 키워드로 찾은 호스텔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식이라는 아이템 앞에 '맛있는'이라는 키워드가 붙는 것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맛있는 조식'이란 사실 특별한 맛보다는 시리얼과 우유, 빵과 치즈, 거기에 커피면 충분하다. 조식은 감탄이 나오는 풍부한 맛보다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만큼 심플하고 담백한 맛을 더 선호한다. 부담 없이 담백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조식의 진정한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제, 저녁을 먹었던 1층 카페의 한 쪽 코너에 조식 코너가 오픈했다. 시리얼도 종류별로 있었고 빵과 햄과 치즈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쌓여있었다. 심지어 신선한 과일까지 있었다. 게다가 커피는 인스턴트커피가 아니라 커피머신으로 직접 내려주기까지! 소박하지만 담백하고 깔끔한, 딱 내가 원하는 '맛있는 조식'의 모습이었다.



 먹을 만큼만 골라서 접시에 담아왔다. 내 앞에 놓인 담백한 아침을 하나씩 음미하기 시작했다.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새 공책을 펼쳐 든 소녀처럼 모든 감각이 새로웠다. 이 공책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쓰게 될까. 어느새 한국에서의 고민과 걱정들은 잊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취준생, 취업, 복학, 마지막 학기라는 어지러운 키워드들은 이 곳에서는 더 이상 쓸 일이 없다. 나를 옭아매던 수식어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온 이 곳에서 나는 진정 자유롭다. 복잡한 미사여구들은 과감히 지워버리자. 여기서 나는 그냥 여행자. 내가 할 일은 여행. 단조롭게 느껴질 만큼 심플하고 담백하게 요약된다.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내 앞에 차려진 이토록 싱그럽고 신선한 여행을 하나씩 음미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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