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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cElephant Jul 30. 2017

가해자 엄마의 고통스러운 질문, 도대체 어떻게?

영화 [케빈에 대하여]/ 책[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영화: 린 램지 감독 [케빈에 대하여]

책: 수 클리볼드[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케빈은 같은 학교 학생들을 살해했다. 자전거용 자물쇠로 학교 강당 문을 걸어 잠그고 학생들에게 화살 시위를 당겼다. 케빈의 아버지와 여동생도 같은 날 케빈의 화살에 숨졌다. 경악하는 군중들을 향해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가는 케빈을 절망과 공포로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살인자의 엄마가 된 에바다. 그녀의 집은 빨간 페인트로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길거리에서 피해자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그녀의 아들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에바는 성실한 엄마였다. 무뚝뚝했지만 무심하지 않았다. 아이를 계속 지켜보고 걱정했다. 케빈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엄마’에게만 은밀하게 드러내는 폭력성을 에바는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남편은 에바가 더 이상하다고 했고 병원에서는 정상이라고 했다. 에바의 불안함에 무심했던 주변은 케빈의 화살이 날아간 후에야 모든 탓을 에바에게 돌린다. 하지만‘We need to talk about Kevin’,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만 한다. 케빈은 어떻게 살인자가 되었는가?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사랑이 부족해서? 고루한 가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1999년 미국의 콜럼바인 총격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엄마 ‘수’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이야기한다. 

 

   딜런은 만화에 나오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은 에바에게 공격적이고 적대적이었다. 살인자가 될만한 징후가 충분히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막지 못한 엄마의 탓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아이에게 활을 선물하는 아빠와 신체검사 결과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하는 병원은 책임과 무관해도 된다. 하지만 콜럼바인 사건의 딜런처럼 이전에 그런 징후가 없었다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말하길, 수는 참극이 벌어진 이후 아이의 온 생애를 더듬으며 징후가 될만한 것들을 찾았다. 분명히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 한 자신을 지독하게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한다. ‘그때는 결코 몰랐었노라고.’ 

 

  평범한 일상에서 섬뜩한 찰나를 발견한 건 지나 놓고 난 후였다. 좋은 엄마라면 모를 수가 없지 않느냐 비난하는 사람들을 수가 이해하는 건 그녀 역시 이전까지는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반복해서 말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조용한 아이라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살인과 자살에 다다를지 모른다고. 이것은 엄마만의 책임도 아니고 아이의 선천적인 기질 때문만도 아니며 너무나 복잡한 환경의 변수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 이야기들을 그녀가 직접적으로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경험과 생각을 반복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읽어낼 수 있게 한다. 가해자의 엄마라는 입장에서 모든 표현에 조심스러웠으리라 생각한다.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곧, 한 아이가 살인자가 된 데에는 온 마을에 책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려운 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완벽한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저마다 다른 취약성을 갖고 있어서 언제 어떻게 극단적인 상태가 될지 모른다. 잔인한 게임이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지는 않지만, 게임이 기폭제가 되고야 마는 취약성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게임을 없애면 해결되는가? 게임은 수 만 가지의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취약성이 폭발하는 기폭제는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또 나타날 수 있다. 모두가 괜찮은 줄 알았던 아이가 우울증이 시작된 건 날씨 좋은 주말의 야구시합, 친구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경험한 몇 초 몇 분 아주 짧은 찰나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경우의 수를 차단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에바를 그리고 수를 평생 괴롭히는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였다.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로 향한다. 극악의 범죄에 있어 모든 걸 엄마 또는 가정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보통의 대다수는 안전지대에 있으니 괜찮다는 걸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모든 불우한 환경의 아이가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지 않는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야 하는 건 ‘어떻게’다.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진상규명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때 가장 앞으로 나와야 할 사회가 실은 가장 큰 목소리로 부모 탓을 하고 있지 않나. 가장 만만한 상대에게 모든 짐을 씌우는 꼴. 해결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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