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cm 카피라이터, 작가 이유미 님을 만나다.
올해 초부터 유럽의 모 육아 브랜드의 디지털 마케팅 PM으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유모차와 하이체어를 판매하는 브랜드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 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았던 작년 초겨울, 나는 이 브랜드를 맡을 거라는 상사의 통보를 듣고 겉으로는 '아 그렇군요. 해야죠.'라고 대답하였으나 속으로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짐짓 자신이 없었다.
'아, 난감하다'. 와 '어떻게든 해보자'의 두 가지 마음으로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디지털 마케팅을 운영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는 칭찬도 듣고 때로는 컴플레인을 받을 때도 있다.
PM으로서 가장 욕심이 나는 건 아무리 한 번 보고 지나칠 콘텐츠라도 카피를 제대로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쓰기나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에 대해서 '그래도 이 정도는 잘 쓰는 게 아닐까'라는 아련한 부심을 가진 내가,
이 브랜드에는 카피를 쓸 때는 항상 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난 결혼을 안 했고, 애도 없으니까'라는 절대 부정할 수 없는 나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는 거다.
그럼에도 난 잘 쓰고 싶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카피라이터 과장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디지털 마케팅도 잘하는데 '어느 브랜드를 맡아도 카피를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 한 가지 개인적인 나의 갈망,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것.
그리고, 나의 이 목마른 갈망에 도움을 주는 강연을 우연히 발견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지난 목요일, 여섯 시 반이 되자마자 사무실을 나와 열심히 열심히 스파크 플러스까지 달려갔지만
강연 시작 시간인 일곱 시 반이 조금 지나서 도착했다.
작가이자 카피라이터 이유미 님은 강연을 시작하며 지금까지의 커리어와,
카피를 쓸 때의 자신만의 노하우를 덤덤하고 쉽게 설명해주셨다.
이 제품이 좋으니 사세요, 얼마큼 할인하니까 사세요!라고 자극하기보다
제품을 쓰는 상황, 사물의 입장,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셨다. 소설의 문장 속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다양한 상황이나,
우리가 살면서 느끼지만 흘려보내는 사소한 느낌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 같다'라는 느낌을 주도록 써야 한다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나도 질문을 했는데,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기 전에 글의 주제가 정해지면 그것에 대해 머릿속으로 명확하게 기승전결이 있어야 써져서 오히려 더욱 생각이 많아지고 어려운데 이런 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라는 질문이었다.
작가님은 소재를 많이 모아놓고, 다른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셨으며,
소재가 정해지면 '그 소재에 대해 쓰고 싶을 때' 쓰라고 조언해주셨다.
또한 이렇게 글쓰기 클래스나 강연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좋은 시도이며,
본인이 닮고 싶은 작가의 에세이를 많이 읽고 써보라는 강 같은 조언을 해주셨다.
실로 오랜만에 누군가의 강연을 들었다.
사실 나의 실무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 1차 목적이었기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착한 장소에서
'문장 수집 생활'을 못 받은 것에 대해 나도 모르게 직원분들께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혹시 보실지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책에 사인을 해주시던 작가님도 그 모습을 보셨다고 해서 민망한 감정이 올라왔다.
'부지런하고 빠딱빠딱 움직이면 그 책을 볼 수 있을 거야!'라는 내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질문을 정성껏 답변을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건 내가 느낀 건데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실 때 작가님의 모습은
'당신도 글을 쓸 수 있어요. 해보세요.'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라고 나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몇 달 전 29cm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간에 진행을 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어 아쉬운 마음이 있다.
29cm와 다시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작가님의 카피를 또 한 번 볼 수 있을 텐데.
추신. 이유미 작가님이 추천하시는 책 리스트는
(책 이름 - 작가 이름 순서)
1. 비행운 - 김애란
2. 뭉클하면 안 되나요? - 마스다 미리
3.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 요조
4. 나의 두 사람 - 김달님
5.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6. 온전히 나답게 - 한수희
7. 내가 원하는 시간 - 파비오 볼로
8. 어제의 신 - 니시카와 미와
9. 알바생 자르기 - 장강명
10. 동화 쓰는 법 -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