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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Nov 25. 2019

그래서, 언젠가 나도 산티아고 까지 걸을 수 있을까

<자기만의 모험 - 이우> 를 읽고

언젠가부터 나에게 여행의 끝판왕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행이었다.

2006년, 처음으로 한 해외여행이자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던 그 때, 나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다녀온 뒤로는 다녔던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에 들러 틈만나면 여행 관련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여행정보책, 여행에세이, 관련 나라의 역사책 등등.. 나보다 이 여행이라는 세계를 탐독한 내 또래는 없으리라,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우쭐하게 생각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막연하게, 대학을 졸업해도 어찌저찌 생활은 이어져나가며

멀리 떠나는 해외여행도 쉽게 할 수 있을거라는 철없는 기대를 품었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여행 관련 책을 보던 도중 '산티아고 순례길' 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내게 여행이란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의 유명한 장소를 관광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유희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의 산티아고 라는 곳 까지 800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걷는 순례 여행이라는 것을 안 순간,

마치 무지몽매한 자가 미지의 세계의 현관문을 겁도 없이 벌컥 열어버려

감당못할 압도감을 느낄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


여행이라는 것은 내겐 코 앞에 가까이에 있는 개념이었지만

순례라는 것은 몇백년전 남루한 차림의 한 수도자가 몇개 되지 않는 물건을 챙기고

황야를 터벅터벅 걷다가 고통스러워 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향한 길을 그저 걸으며 사색하고, 풍경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 코스는 여러 코스가 있는 데, 어느 코스를 걷다보면 나오는 성당은,

벽에 붙은 수도꼭지를 틀면 레드와인이 나온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이 또 어디있으랴며, 내겐 멋진 하나의 동경으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여행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산티아고 순례가 유행이라고 하기엔 대세는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한국인이 다 하지는 않을 정도의 인지도를 가졌을 때,

왠지 '다른사람들이 이미 많이 갔군, 그 전에라도 걸었어야 했는데, 갑자기 가기 싫어진다.' 는

이상한 홍대병 비스무리한것에 걸리고,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지탱해야 했기에,

막연히 '언젠가는 가지 않을까' 라는 외면적이고 미미한 희망을 마음 한 구석에 몰아넣은채

나는 철저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본적이 없는 사람' 으로 지냈다.


작가 이우는, 나처럼 언젠가는 걷겠다는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실천하였다.

두 발로 오롯이 걸으며 산티아고, 그리고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피니스테레' 까지 순례를 마쳤다.

그의 책 <자기만의 모험>은 생장 피드 포르에서 피니스테레까지 걸으며 그 여정에서 있던

여러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깨달은 작가만의 단상이나,

이전에 작가가 갖고 있었던 여러 생각과 관념들이 여정을 통해 고착되고 때론 깨지고

때로는 새로 생기는 그 모든 것을 담았다.

방황을 동경하며 까미노 ('길' 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를 걸었던 작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뻔한 태양의 움직임에서도 인생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어렴풋이 깨닫고, 또 걸었다.



나의 여정은 과거를 등에 업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셈이었다.
문득 이 여정이 삶의 메타포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로부터 동쪽은 탄생과 시작을, 서쪽은 죽음과 끝을 의미했다.
어쩌면 나는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향하는
삶의 여정의 비밀을 어렴풋이 깨달은지도 몰랐다. (중략)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산티아고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또한 나는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마치고 그에 대한 책을 낸 사람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힘들더라도 묵묵하게 걸으며

그만의 세계를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게 단단히 만들고,

이미 무언가를 달관한 사람일거라는 나만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에세이 속 작가도 그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여러 나라에 머무르고 여행을 다녔던 작가도 길을 걸으며

맞딱드리는 여러 어려움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에서 시작한 여러 생각과 욕망을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을 걷는 것으로 동기화하고,

그 여정에서 만난 여러 순례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서 보여지는 여러 모습을 작가 자신에게 투영하여 마치 패치워크 처럼 기우고,

짜집기하여 다시 자신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인간이란 패치워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히고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짜집기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인수분해를 하면
분명 누군가에 귀속되는 조각들로 나뉠 것이다.
인간은 결코 짙은 개성을 가진 본연의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
개성 내지 정체성은 스스로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조각을 찾아나가는 모험이 아닐까.


걷는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가고, 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이다.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이정표를 따라서 걷다가 보면 마주치는 어느 한 순간이 행복 또는 절망의 파편들이다.

작가는 그러한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딘가로 떠난다. 이제 내겐 산티아고로 떠나는 순례 여행이 단순한 인생 미션이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거창한 개념으로 승격된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나에게 돌아가는 하나의 여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산티아고 순례자길을 걷겠다. 라고 새삼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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