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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n Aug 04. 2021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

스포츠, 그리고 게임

게임을 한다
게임을 본다


내가 e스포츠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게임이 좋아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글을 쓰는 에디터부터 웹 기획자에 이르기까지. 잘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을 제외한 모든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간혹 'e스포츠'란 단어를 두고 논쟁이 오고 가고는 한다. 바로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라는 주제다. 스포츠라는 단어에 electric을 축약한 e가 추가된 e스포츠는 스포츠와 괴리가 상당한 편이다. 확실히 컴퓨터 게임을 통해 겨루는 e스포츠는 몸을 많이 사용하는 스포츠와 비교되는 점이 많다. 특히 e스포츠가 프로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비난을 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곤 한다.

간혹 전통 스포츠 팬들이 e스포츠 팬들의 문화를 비판하며 '아이돌 같다'는 이야기를 꺼내고는 한다. 성향이 다른 팬덤이 전통 스포츠를 즐겨봤던 팬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오는 것이다. 팀의 성적보다 개개인의 성적을, 선수에게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와서 다시 해당 질문이 떠올랐다. 'e스포츠와 스포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스포츠는 무엇인가?

먼저 스포츠가 무엇인지 정의해보자. 스포츠란 무엇인가? 스포츠의 시작은 어디이며, 어떻게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스포츠의 뿌리는 놀이다. 놀이는 게임으로, 게임은 스포츠로 변화했다. 

나는 스포츠에 뿌리가 '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놀이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일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여유가 생겼을 때 재미를 충족하기 위해 놀이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 시작이 농경 사회로의 전환이든, 그 전이든 말이다. 놀이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재미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이면 모두 놀이다.


하지만 모든 놀이가 공정한 것은 아니다. 놀이에는 규칙이 없을 수도 있다. 공정한 놀이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규칙이 적용된 공정한 놀이가 탄생했다. 게임이 탄생한 순간이다.


게임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정말 간단한 가위바위보도 게임이다. 게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두뇌를 활용하는 게임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는 바둑과 축구다. 바둑과 축구 모두 승부를 정할 수 있으며, 바둑판과 축구장이라는 해당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는 공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축구와 같은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은 다른 게임과 구분해 부를 필요가 있었다. 분명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은 분명 두뇌를 활용하는 게임보다 더 직관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보기에 용이했다. 앞서 말했듯 게임은 정해진 규칙이 있는 필드에서 이뤄진다. 두뇌를 활용하는 바둑의 바둑판보다 신체를 활용하는 축구의 축구장이 훨씬 넓다. 다른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넓은 경기장은 많은 사람이 보기에 용이한 환경을 제공했다.

가장 큰 축구장 중 하나인 텍사스의 at&t 스타디움은 최대 10만 5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스포츠는 다른 게임과 달리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보는 게임이 탄생한 순간이며, 보는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다. 여기서 엔터테인먼트의 담겨진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엔터테인먼트는 주로 연예계에서 사용된다. 처음 들었을 때 가수나 아이돌의 노래나, 댄스 등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의 정의는 훨씬 방대하다. 한국어로 오락에 가깝다. 영문판 위키피디아는 '청중의 관심을 끌거나, 즐거움을 주는 활동의 하나'라고 정의하며, 엔터테인먼트의 종류로 스포츠를 포함하고 있다. 무엇을 관람하는 것의 대부분을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로마에 남아있다. 모두에게 익숙한 콜로세움은 분명 '게임'을 즐기는 경기장이며, 공연장이기도 하다. 콜로세움은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검투 등의 게임 외에도 서커스,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 콜로세움에서 펼쳐졌다. 또한, 콜로세움 옆에 위치한 전차 경주장인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최대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4세기경 로마. 왼쪽부터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콜로세움 (wikipedia)

물론 스포츠라는 단어는 중세 프랑스어로 즐거운 취미 등 의미를 가진 'disport'이며, 15세기 초 처음 확인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정리하면 스포츠는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이다. 최근 개최되는 올림픽 역시 정확한 명칭은 올림픽 게임(Olympic Games)이다.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은 넓은 경기장 덕분에 보는 게임으로 발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은 기존 게임과는 구분되어 '스포츠'로 불렸을 것이다. 


스포츠의 (원래) 정의 

공정한 규칙이 적용된 특정한 공간에서 승부를 겨루는 게임

주로 신체를 사용하는 규칙들

엔터테인먼트화에 유리함 (넓은 경기장을 통한 많은 관중을 수용 등)


e스포츠는 무엇인가?

앞서 나는 몸을 사용하는 게임이 스포츠로 구분되었을 것이라 가정했다. 그럼 e스포츠는 무엇인가? 스포츠 앞에 electric이란 단어가 붙은 e스포츠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스포츠의 정의와는 동떨어진 측면이 존재한다. 특히 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그렇다면 e스포츠는 무엇인가?


보드게임

e스포츠의 기원은 무엇일까? 앞서 모든 스포츠는 게임이라 정의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타크래프트 이전, e스포츠로 불리는 게임들의 근본적인 뿌리는 어디일까?


앞서 말했듯 게임은 머리를 활용한 것, 몸을 사용한 것으로 나뉘었다. 앞서 몸을 사용한 게임은 스포츠가 되었다. 하지만 스포츠 외 게임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는 오늘날의 [보드 게임]이다. 거의 모든 보드 게임은 두뇌를 활용하고,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규칙이 알려진 가장 오래된 보드 게임은 기원전 3,500년 경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세네트]라고 한다. 보드 게임도 게임이다.


세네트 (사진출처: https://schbeom.tistory.com/403)

하지만 보드 게임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스포츠의 위상에 근접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경기장(Field)이 작았다. 많은 사람이 보기에 부적합하다. 과거 사람들이 바둑을 보기 위한 경기장을 만들었다 생각해보자. 바둑판 가로 42cm, 세로 45cm의 나무판이다. 축구의 가로 90m, 세로 45m와 비교해도 기본 100배 이상의 차이다. 관중석이 넓으면 돌들의 움직임을 볼 수 없다. 0.189㎡의 경기장을 수만 명이 볼 수 있을까?


두 번째는 규칙이 어렵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작은 필드는 이를 보안하기 위한 다양하고 많은 규칙이 필연적이다. 이는 규칙의 어려움으로 귀결된다. 머리를 쓰는 게임은 분명 몸을 쓰는 게임인 스포츠보다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스포츠는 넓은 관중 수용과 이해하기 쉬운 규칙으로 쉽게 엔터테인먼트로 즐겼지만, 과거 머리를 쓰는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있어 어렵고, 보기 힘들었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경기 진행이 루즈한 게 세 번째 이유다. 보드게임은 대부분 턴제로 진행된다. 작은 필드에서 공정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역동적인 면에서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한 수 한 수의 선택이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한 번 진행을 위해서는 많은 생각이 필요해 진행 시간이 느렸다. 프로 바둑은 한 경기에 2~3시간이 소요된다. 일본 바둑은 과거에는 8시간,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디오 게임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컴퓨터가 등장했다. 최초의 컴퓨터로 에니악이 유명하다. 컴퓨터는 사람에게 버거운 복잡한 계산을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정보통신의 혁명이 일었다. 이에 따라 컴퓨터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당시 컴퓨터의 정의는 애매모호해 비슷한 기기들도 컴퓨터로 칭함)

1947년 최초의 전자 게임 중 하나인 음극관 놀이 장치 (Cathode Ray Tube Amusement Device)

몇몇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컴퓨터로 노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만 했던 게임들을 컴퓨터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우주를 누비고, 총을 쏘고, 특수 능력을 활용해 결투를 하는 등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양한 게임을 컴퓨터로는 할 수 있었다. 컴퓨터와 비슷한 기기를 통해 전자적인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비디오 게임이 등장했다. 초창기 컴퓨터 게임은 단순했다. 바둑, 체스 등 보드게임을 단순히 옮겨놓은 것, 그리고 최초의 컴퓨터 게임으로 알려진 퐁(PONG),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 게임은 예술이라며 큰 호평을 받는다.

최근 공개된 포르자 호라이즌5는 사실 같은 그래픽으로 큰 화제를 불러왔다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으며, 주로 두뇌 회전으로 승부를 본다는 점. 완전히 같다고 보기에 어렵지만 비디오 게임은 보드게임과 닮아있는 점이 많다. 또한, 컴퓨터의 등장으로 보드게임 특유의 턴 방식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반응속도, 손 빠르기 등 컴퓨터 게임만의 요구 능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e스포츠

비디오 게임은 보드 게임과 달랐다. 경기장의 제한이 없었고, 진행이 루즈하지 않았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게임은 규칙이 어려운 편도 아니다. 이는 보는 게임으로서 스포츠와 근접했다는 의미다.


다만 중요한 과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비디오 게임은 아직 스포츠처럼 많은 관중을 수용하기에 부적합했다. 실시간 중계가 어려웠던 시절, 스포츠를 보려면 경기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보는 방법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e스포츠의 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히 보는 방법은 발전하고 있었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고도화되는 중이었다. 다양화되고, 대형화됐다. 이제 스포츠를 보기 위해 반드시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TV, 컴퓨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포츠를 챙겨볼 수 있다. 또한,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많은 관객 수용으로 이어졌다. 디스플레이가 대형화되며 스포츠처럼 필드가 넓지 않아도 큰 경기장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고도화되며 비디오 게임은 스포츠와 동일한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e스포츠로 부르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국제대회인 LoL Worlds Championship. 국내에선 '롤드컵'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정리

스포츠와 마찬가지다. e스포츠도 게임이다. 놀이에서 게임이. 게임에서 보드 게임이. 보드 게임에서 비디오 게임(컴퓨터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은 스포츠와 비슷한 경쟁성과,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즉,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추었다. 결국 스포츠와 비슷해진 비디오 게임을 차별화하는 의미에서 e스포츠로 부르기 시작했다.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

본론으로 돌아오자.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 이 질문의 답은 아닐 수도, 맞을 수도 있다.


ⓐ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는 근본적으로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이다. 신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넓은 경기장을 가졌고, 넓은 경기장으로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일 뿐이다. 특히 e스포츠는 스포츠와 출발점이 달랐다. e스포츠는 주로 신체를 사용하는 게임이 아니다. 신체를 활용한다 해도 손가락과, 손목에 그칠 뿐이다.


도타2의 국제대회인 The International


ⓑ 스포츠가 맞다. e스포츠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스포츠에 근접해왔다. 넓은 경기장을 만들어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TV, 스마트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다. 또한, 현실에서 펼쳐지는 게 아니라는 점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의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컴퓨터 게임 자체의 발전이든, 디스플레이의 발전이든 e스포츠의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다. 


이 답의 결론은 여러분의 몫이다. 단어는 계속 변화한다. 스포츠란 단어의 의미는 현재와 미래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e스포츠를 스포츠로 받아들이며 '스포츠'라는 단어에 e스포츠가 포함되거나, e스포츠를 스포츠와 다른 독자적인 영역으로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스포츠에 포함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비디오 게임은 그 자체의 매력이 있다. 오히려 스포츠보다 무궁무진하다. 컴퓨터와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시스템과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스포츠를 뛰어넘을 가능성도 있다.


글을 마치며

축구와 같은 스포츠도, 바둑과 같은 보드게임도,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비디오 게임도. 모두 게임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결국 게임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다만 과거 스포츠는 넓은 경기장을 통해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공연 등과 같이 관람하기 쉬워졌다. 엔터테인먼트화에 유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은 보는 방법이 발전했다. 넓은 필드가 없어도, 큰 경기장을 지을 수 있다. 또한, 비디오 게임은 신체를 사용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비디오 게임을 재미있게 관람한다.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비디오게임을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면서 스포츠와 비슷해졌다. e스포츠로 부르고 싶은 이유도 이해한다. 하지만 스포츠란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스포츠도, e스포츠도 결국 게임을 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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