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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Oct 03. 2021

아무도 맞지 않는 의자

- 평균이라는 것

미국 공군에서 기기나 시스템의 오류가 없다고 판단되는데도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전투기의 문제점을 조사하던 중, 예전에 만들어진 조종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군 당국은 4000명이 넘는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많은 항목의 신체 치수를 꼼꼼하게 측정하여 평균 치수를 산출하였고, 그 평균값을 바탕으로 최적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조종석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는데,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이 '평균적인 의자'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전 항목에 맞는 평균적인 조종사는 0명이었고, 항목의 범위를 좁혀 몇 개의 항목만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평균 범위에 드는 조종사는 채 3.5%가 안 되었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나는 누구를 위한 수업을 했었는지. 


정원이 한국어교실을 그만두었다. 

담당 선생님이 살짝 부르셔서 정원이 오늘부터 한국어교실에 나오지 않는다고 전해주셨다. 정원은 나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이상 부딪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의외였다.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쳐 장난도 많이 치고 해서 그것을 제어하고 학습을 하느라 곤란하긴 했지만, 정원과 나딘은 어제 수업이 끝나고서도 손을 잡고 함께 웃으며 하교했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도 한참 동안 교실로 돌아오지 않아 화장실에 가 보면 둘이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낄낄거리며 화장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기도 했다. 영어가 자유로운 학생은 정원과 나딘 두 명이었기 때문에 더 친해지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딘 때문에?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원과 나딘 사이의 모든 상황에서 나딘이 주도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반에서 가장 활발한 나딘은 게임을 할 때도 학습을 할 때도 목소리가 가장 크고, 그 분위기를 주도해야만 했다. 그 분위기가 물론 좋은 쪽으로 흘러갈 때도 있지만, 수업시간에 장난을 시작하는 것 또한 90% 이상이 나딘이었다. 나딘이 유나가 좋다고 무작정 자꾸 껴안으려고 해서, 유나는 "코로나야, 안 돼!"라고 말해야만 했고, 그런 말을 들은 나딘은 또 속상해했다. 정원의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가서, "빌려줘"라는 말을 수없이 연습시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였다. 


이런 나딘과 비교하자면, 정원은 한없이 어린아이 같았다. 나딘이 말도 없이 아끼는 지우개를 가져가서 사용했을 때, 정원은 속상해하며 책상 밑에 들어가 울고 있었는데, 엄지 손가락까지 빨고 있어서 좀 놀랐던 기억이다. 이런 정원에게 나딘의 행동이 부담스러웠고, 같이 어울렸지만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보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이유였지만, 나는 정원이 그만둔 것이 아무래도 나의 수업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젼과 유나, 수수, 나딘, 정원 이렇게 5명으로 시작한 한국어교실 저학년 반은 5명 사이에서도 수준 차이가 있어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중에 정원은 한글자모를 거의 읽지 못했고,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였다. 나의 수업은 한글자모부터 시작했지만, 그 속도가 정원에게는 무척 빨랐을 것이다. 젼과 유나는 받침까지도 곧잘 읽어내고 있어서 그 아이들에게는 또 시시했을 것이다. 각기 활동지를 달리하여 개개인의 수준에 맞게 학습을 돌봐주려고 노력도 했지만, 옆 친구와 한글을 읽고 있으면 자신의 활동지는 풀지도 않고 서로 장난을 치다가 급기야는 한쪽이 울음보가 터져버리거나, 집중시간이 극도로 짧은 젼에게 이 방법은 장난을 치라고 시간을 주는 꼴이 되었다.  


결국 5명의 평균에 맞는 수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중 그 의자를 가장 불편해했던 정원이 그만두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엉덩이가 아픈데도 참고 앉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 공군은 위의 일을 계기로 시스템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람에 시스템을 맞추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등받이 각도와 좌석의 높낮이를 개개인에 맞출 수 있는 자동차 좌석이라고 한다.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더 발전된다고 믿는다. 

5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학생과 선생님은 서로 가르치며 배운다는 말이 틀린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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