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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Oct 23. 2021


아이들의 개인지도 선생님

나딘과의 갈등으로 정원이 한국어교실을 그만둔 며칠 후, 젼 아버님께 전화를 받았다. 나딘이 자꾸 젼을 괴롭혀서 속상해하니 선생님께서 잘 좀 조율해달라고 하셨다. 


나딘이 학급에서는 어떤지 알고 싶어 나딘의 학급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선생님께서도 사실 매우 힘들어하시는 중이었다. 나딘의 넘치는 에너지가 학급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줄 때도 있지만, 나머지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는 날이 더욱 잦아지니 문제가 되었다. 


결국, 젼은 겔이 귀국하면서 생긴 빈 시간에 1:1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둔 정원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나는, 학교와의 6주 계약 연장을 계기로 매주 수요일마다 2차시씩 정원의 1:1 수업을 계획하였다. 

 

한국어교실 저학년 반은 이제 

나딘, 유나, 수수 // 젼 // 정원 이렇게 소수의 세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젼과 정원의 한국어 개인지도 선생님이 되었다. 


1:1로 수업함을 알린 다음 차시부터, 젼과 정원의 어머님께서는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달라는 무언의 부탁을 하셨다. 젼은 그림일기를, 정원은 받아쓰기를 들고왔다. 


젼은 그림을 매우 자세히 잘 그리는 편이었고, 색깔도 다채롭게 사용했다. 글도 생각보다 잘 써서 깜짝 놀랐는데, 그동안 맞지 않는 불편한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을 젼을 생각하니 정말 반성이 되었다. 젼은 부모님이 모두 방글라데시인이고, 그 중 한국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버님이 퇴근 후에 젼과 함께 씨름하며 그림일기를 완성하고 있는 듯했다. 

< 젼의 일기쓰기 연습 >

오늘은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고 해서 하교 후의 일을 말하고 그대로 공책에 옮겨 쓰는 일기를 쓰기로 했다.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지만, 젼은 띄어쓰기도 잘 해냈고, 문장부호도 잘 이용했다. 마침표를 잘 썼다고 칭찬해 주었더니 본인은 이것도, 이것도 알고 있다며 물음표, 쉼표, 따옴표 등도 눈을 반짝이며 써냈다. 


1학년 2학기부터는 학교마다 받아쓰기를 한다. 받아쓰기 급수표를 나누어주고, 한 급수를 1주일 동안 연습해서 매주 한 번 시험을 본다. 한국어교실 아이들에게는 이 받아쓰기가 매우 스트레스인데, 특히 부모 두 분 모두 한국어가 수월하지 않은 정원의 가정에서 받아쓰기는 거의 포기상태였다. 정원이 자모인지가 아직 부족한 것도 있지만, 받아쓰기 급수표에 제시된 단어와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이 더 문제였다. 하나하나 영어로 설명해주고 (정원의 가정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몇 번씩 써보았다. 

< 받아쓰기 공부 - 정원 >


개인지도를 하면서 아이들이 필요한 부분을 메꾸어주고 있다는, 필요한 것을 때에 맞춰 알려주고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지만, 이 또한 계속될 수 없기에 고민이 된다. 이렇게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더 큰 그림을 계획하고 숲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맞을까. 전자이든 후자이든 하나가 맞다면, 그것을 짧은 시간동안 효율적으로 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2학년이 되면, 또 한국어교실이 열릴 수도 있지만, 학교 사정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한국어교실, 다문화교실을 계획하더라도 가정통신문을 읽을 수 없어 신청을 못하는 가정도 있었다. 이런 오차를 줄이기위해 학교에서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가정통신문을 보내는데, 그마저도 전달이 안 되기도 한다. 


한글을 읽을 수 있더라도 다른 과목의 학습이 뒤쳐지면 기초학력교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실제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기초학력교실에 들어가는 비중이 높다. 이것이 중고등학교로 연계되어 학교를 아예 그만두는 중도탈락이 생기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한국어교실, 다문화 교실은 모든 부분의 기초가 되는 수업임에 틀림이 없고, 나는 그 강사로서 매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들과 만나는 하루하루, 아이들이 주는 숙제로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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