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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Nov 03. 2021

알 수 없는 마음

 

정원과 다시 만났다. 

나딘을 이유로 정원이 한국어교실을 그만두고 내내 마음이 찜찜했는데, 학교와의 계약 연장을 계기로 다시 수업계획을 짰다. 정원을 위해 시간을 추가하여 할애해야 했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무리가 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다시 공부할 수 있는지를 정원의 어머님과 정원에게 물었을 때 그 반응은 나의 걱정을 가뿐히 넘어섰다.


6주 동안의 무리한 일정 정도야, 할 수 있다! 

정원 어머님은 그날 저녁에 너무너무 감사하다, 오늘 이 소식을 들어서 하루 종일 너무 기분이 좋았다는 문자까지 남겨주셨다.  


1:1로 다시 만난 첫 수업 날, 내가 영어를 사용하자 정원은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지금부터 정원의 말은 모두 영어)

"선생님, 왜 영어 할 수 있어요? 선생님들은 모두 영어 할 수 있어요?" 


정원과의 1:1 수업에서는 영어를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어교실 저학년반의 아이들 중 영어가 가능한 학생은 나딘과 정원 둘이었다. 둘은 가끔 영어로 수다를 잘 떨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한국어교실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해야 한다. 나딘과 수수가 같이 있을 때, 아랍어로 말하는 것도 금지. 둘 다 못 알아듣는 젼이나 유나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고, 한국어교실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는 한국어로 가르친다. 


하지만, 지금 정원의 입장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정원은 아직 자모인지가 서툴고, 배고파요, 먹어요, 쉬는 시간, 화장실 등의 생존 한국어만 조금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여섯 번의 짧은 만남 동안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서 나도 역시 영어를 섞어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영어로 말문을 튼 순간, 정원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나는 갑자기 지난 5개월 간 몰랐던 정원의 가정상황을 너무 자세히 알아버렸다. 정원의 엄마는 필리핀 사람인데,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으로 귀화했고, 그리고 이혼했다. 지금 정원의 아빠인 미국인을 만났고, 재혼했다. (아, 그래서 엄마가 한국 이름이고 정원도 한국 이름인데 가정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구나.) 정원은 아빠의 자녀들과도 자주 소통한다고 한다(아빠도 재혼이시구나). 그래서 집에서는 혼자 있지만(외동딸) 언니와 오빠들을 만날 때는 혼자가 아니라서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수업시간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라고 말할 때마다 어깨를 으쓱하며 "왜요?"라고 물었던 정원의 몸짓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년 1월에 엄마와 필리핀으로 아주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빠의 한국에서의 업무가 끝나면 아빠도 필리핀으로 돌아가실 예정이라, 이제 한국에 언제 다시 올 지는 모른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이 언제나 재미있다고 대답했던 정원이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나는 한국에 친구가 없어요. 너무 슬퍼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서 필리핀에 있는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려는 순간,  휴대폰 배경화면에 나란히 웃고 있는 나딘과 정원을 발견했다. 속으로 좀 놀랐다. 나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한국어교실을 그만둔 것이 아니던가?! 


조심히, 물었다. 

"나딘이 싫지 않아요? 나딘 때문에 한국어교실에 못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음...... 나딘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나는 친구가 없어요. 너무 심심해서 나딘과 놀고 싶지만, 놀고 나면 또 힘들어요. 나딘은 계속 저를 따라다니고 같이 놀 때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 하지만 나딘과의 사진은 지우고 싶지 않아요.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필리핀에 돌아가니까 친구가 많아요!" 


정원에게는 알려주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한국어교실의 다른 아이들은 한글이나 한국어 의사소통이 점점 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정원은 아직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고, 학교생활을 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 아기 같아서 생활태도나 습관 부분에서도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어쩌면 꼼꼼하게 계획한 것보다 그 순간에 해야 할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아무래도 정원에게는 같이 앉아서 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친구'가 고픈 것이다.   


[커버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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